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선건(善健), 호는 학봉(鶴峯). 형조좌랑 고운(高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참의 고맹영(高孟英)이고, 아버지는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이며, 어머니는 김백균(金百鈞)의 딸이다. 형이 의병장 고종후(高從厚)이다.
1577년 진사가 되고, 158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학유(學諭)에 이어 승문원정자를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관찰사 이광(李洸)은 관군을 이끌고 북상, 공주에 이르러 선조가 몽진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해산, 귀향시켰다.
이때 광주의 향리에 있으면서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이들을 다시 모아 형 고종후와 함께 수원에 유진(留陣)하고 있는 정윤우(丁允祐)에게 인계하고 행재소로 가려 하였으나, 길이 막혀 귀향중에 북상중인 아버지의 의병 본진과 태인(泰仁)에서 합류하였다.
의병이 여산(礪山)에 이르러 황간(黃澗) · 영동(永同)의 왜적이 장차 전라도로 침입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당초의 계획을 변경하여 금산으로 향하였다. 금산에서 방어사 곽영(郭嶸)의 관군과 합세하여 왜적을 방어하기로 하였으나, 왜적이 침입하자 관군이 먼저 붕괴되고, 이에 따라 의병마저 무너져 아버지 고경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예조참의에 추증되었다. 광주(光州)의 포충사(褒忠祠), 금산의 종용사(從容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의열(毅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