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제보(濟甫), 호는 우암(寓庵)·제촌(霽村). 권계경(權啓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곤(權琨)이고, 아버지는 생원 권사빈(權士彬)이며, 어머니는 주부 윤당(尹塘)의 딸이다. 우찬성 권벌(權橃)의 동생이다.
1519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현량으로 추천되어 홍문박사(弘文博士)가 되었으며, 검열(檢閱)을 역임하는 등 신진사류로 촉망을 받았다.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대사헌 이항(李沆), 대사간 이빈(李蘋) 등의 탄핵을 받았다. 이후 1528년(중종 23)에 경상좌도점마별감(慶尙左道點馬別監)를 지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기묘사화 이후 배척되어 용궁현감으로 좌천되자 울분 속에 지내다가 죽었다고 하는 설과 금산군수로 좌천되어 부임하러 가다가 병들어 죽었다는 설이 있다.
기묘명현(己卯名賢) 중의 한 사람으로, 뜻이 소박하고 자질이 순후하며 학문이 해박, 통달하고 효행과 우애와 지조가 있었다고 한다. 뒤에 부제학에 추증되고, 예천의 봉산서원(鳳山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