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제(公濟), 호는 만취당(晩翠堂). 영천 출신. 김세형(金世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복흥(金復興)이고, 아버지는 김몽득(金夢得)이며, 어머니는 이극온(李克溫)의 딸이다.
1573년에 사마시에 합격, 생원이 되고 159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정랑을 거쳐 군수에 이르렀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정성껏 모셨으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에 임해서는 의리로써 털끝만큼도 굽히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불우한 세상을 살다가 죽었다. 뒤에 집의가 추증되었고, 1643년(인조 21) 영천의 삼봉서원(三峯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만취일고(晩翠逸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