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빙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대한 추국을 맡았으나 역적을 동정한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된 문신.
이칭
경중(敬中)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9년(명종 4)
사망 연도
1589년(선조 22)
본관
통주(通州)
주요 관직
형조좌랑
관련 사건
정여립의 옥사
정의
조선 중기에,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대한 추국을 맡았으나 역적을 동정한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된 문신.
개설

본관은 통주(通州). 자는 경중(敬中). 아버지는 김익한(金翼漢)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0년(선조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조좌랑을 지낸 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이 모반에 실패하자 자결하였는데 그 이듬해 정여립을 추형(追刑)할 때 형조좌랑으로서 추국관(推鞫官)이 되었다. 그러나 추국을 하다가 지병으로 눈물이 흘렀는데, 적대관계에 있던 백유함(白惟咸)이 역적을 동정하여 운다고 무고하여 곤장을 맞고 죽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송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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