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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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대사
제도
통일신라시대,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던 중앙 행정 관청.
제도/관청
설치 시기
682년(신문왕 2)
내용 요약

공장부(工匠府)는 통일신라시대에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던 중앙 행정 관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 의하면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때 전사서(典祀署)로 관호를 바꾸었다가, 신라 제36대 혜공왕(765~780) 때, 다시 공장부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경덕왕 18년(759) 정월 기록에 전사서와 공장부를 함께 전하는 것으로 보아, 공장부를 경덕왕 때에 전사서로 고쳤다고 전하는 것은 『삼국사기』 직관지의 오기로, 공장부와 전사서는 별개의 관부였을 것으로 보인다.

목차
정의
통일신라시대, 수공업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던 중앙 행정 관청.
내용

통일신라시대의 중앙 행정 관청이다. 직무와 관련한 자료가 없어 담당 업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공장(工匠)이라는 명칭으로 보아 수공업 제품 생산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8 잡지7 직관지(상) 공장부조에는 경덕왕 대에 관호를 바꿀 때 주2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혜공왕 대에 관호를 다시 공장부로 되돌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명칭을 공장부에서 전사서로 바꾼 것으로 보아, 제사에 사용하는 기물을 제작하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였을 수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직관지(상)에 공장부와 별도로 예부 소속의 전사서가 기록되어 있는데, 신라본기와 직관지(상) 기사 모두 713년(성덕왕 12)에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본기 9 경덕왕 18년(759) 정월조 관호 개정 기사에 공장부와 전사서가 동시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공장부와 전사서는 별도의 관청이 분명하다. 따라서 경덕왕 때 전사서로 관호를 개정하였다는 직관지(상)의 기록은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하여 종교의식이 확대되면서 제사의식에 필요한 제의용 물품을 생산하는 일이 크게 늘어나 종래 공장부가 제작하던 제의용 물품 생산 업무를 전사서로 이관하고, 공장부는 관영 수공업자를 관리하고 일상용품 생산 업무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직무 분할이 전사서 개칭으로 잘못 전해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이와는 달리 공장부가 경덕왕 대 전사서로 통폐합된 것이 잘못 기록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변천 사항

공장부의 설치 연대는 장관직인 감(監)이 신설된 682년(신문왕 2)으로 볼 수 있다. 그보다 앞선 651년(진덕여왕 5)에 실무직인 대사(大舍)가 설치되었지만, 담당 업무를 보는 관원을 두는 정도였을 것이고, 체계적인 관직 체계를 갖추어 관청을 설치한 것은 감이 설치된 때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소속 관원으로는 장관인 감이 1명, 중간 관리직인 주서(主書)가 2명, 말단 실무직인 사(史)가 4명 있었다. 감은 682년(신문왕 2)에 처음 두었는데, 관등이 대나마(大奈麻)에서 주3인 사람이 임명되었다.

주서는 651년(진덕여왕 5)에 대사로 처음 설치되었다가, 759년(경덕왕 18) 1월에 주서로 개칭되었다. 직관지(상)의 기사에 주사(主事)라고도 하였다는 주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뒤에 개칭되었을 수도 있다. 주사는 관등이 사지(舍知)에서 나마(奈麻)인 사람이 임명되었다. 사는 임명이 가능한 관등이 따로 명시되지 않았다.

한편 신라 중앙 행정 관청의 이름은 장관직의 위계를 반영하였다. 주로 부(部)와 부(府)는 장관이 영(令)인 최상위 관청이다. 그런데 공장부는 추정되는 직무도 다른 상위 관청과 차이가 나고, 또 장관도 감이어서 ‘-부’라는 관청명이 어색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 때문에 장관직이 감인 관청들의 이름 형식이 ‘-서(署)’인 것을 고려하여, 공장부서가 원래의 명칭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전덕재, 『삼국사기 잡지‧열전의 원전과 편찬』(주류성, 2021)
이인철, 『신라정치제도사연구』(일지사, 1993)
홍희유, 『조선중세수공업사연구』(평양:과학백과사전출판부, 1978)

논문

한영화, 「신라 예부의 성립과 운영」(『인문과학』 76, 성균관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20)
주석
주1

신라 때에, 사묘(祠廟)의 공사를 맡아보던 관아. 경덕왕 18년(759)에 공장부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주2

신라 때에, 사묘(祠廟)의 공사를 맡아보던 관아. 경덕왕 18년(759)에 공장부를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주3

신라 때에 둔, 십칠 관등 가운데 아홉째 등급. 육두품 이상이 오를 수 있었다.    우리말샘

집필자
홍승우(경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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