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연(計烟)은 통일신라시대에 적장(籍帳) 문서인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에서 호등을 반영하여 계량화한 계산상 호수이다. 「신라촌락문서」에 기재된 호의 숫자이나, 자연호를 의미하는 공연(孔烟)과 달리 호등을 기준으로 별도로 산정한 계산상 호의 수이다. 중상연을 기준으로 하여 계산하였고, 그 촌이 부담해야 할 조세의 총량을 산출하는 데 활용되었다.
계연(計烟)은 통일신라시대에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에 기재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신라촌락문서」는 주 ‧ 군 ‧ 현의 3단계 지방 행정 단위에서 제일 하위 단위인 현 아래의 기초 단위라 할 수 있는 촌의 여러 경제적 상황을 담은 문서이다.
「신라촌락문서」에는 합공연(合孔烟)과 계연(計烟)이라는 항목이 나오는데, 이는 호(戶)와 관련된 수치이다. 고구려 「광개토왕릉비」와 「집안고구려비(集安高句麗碑)」에서 호적의 편제 단위인 호(戶)를 연호(烟戶)라고 하였음이 확인되어서, ‘연’이 ‘호’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합공연’은 ‘연호’와 같이 일반적인 ‘호’의 의미로 보이는 공연, 즉 해당 촌의 실제 호의 숫자를 합산한 숫자로 판단된다.
‘계연’은 그 글자를 볼 때, 계산한 호, 즉 실제 호의 숫자가 아니라 계산상의 호의 숫자라 할 수 있다. 「신라촌락문서」에 자연수로만 나오는 공연과 달리, 계연의 숫자는 ‘4여분3(四余分三)’, ‘4여분2’, ‘1여분5’와 같이 자연수 아래에 ‘여분(餘分)’이라는 표현이 더해져 있어, 계산상의 수치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계연의 수치는 호등(戶等)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신라촌락문서」에는 공연을 일정한 기준으로 상상(上上) ‧ 상중(上中) ‧ 상하(上下) ‧ 중상 ‧ 중중 ‧ 중하 ‧ 하상 ‧ 하중 ‧ 하하 등의 9등급으로 나누어 그 숫자를 적시하였다. 그리고 ‘중상연(中上烟)’을 기준으로 하여 1(6/6)로 정하고, 그 아래 등급들을 차례로 5/6, 4/6, 3/6, 2/6, 1/6로 계산하여 계연을 산출하였다.
「신라촌락문서」에 있는 사해점촌(沙害漸村)의 경우 합공연이 11이고, 그중 중하연이 4, 하상연이 2, 하하연이 5였다. 이를 계산하면 4×4/6+2×3/6+5×1/6=27/6, 즉 4와 3/6이 된다. 이를 ‘4여분3’으로 표시한 것이다.
상상 ‧ 상중 ‧ 상하 등급은 9/6, 8/6, 7/6 혹은 4, 3, 2로 계산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여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라촌락문서」에 이들 등급이 나타나지 않아, 실제 어떤 수치로 계산하였는지를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이렇게 계연을 산출한 이유는 조세 수취를 위한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연을 기준으로 조(租) ‧ 용(庸) ‧ 조(調) 및 군역(軍役) 등 모든 세목을 부과하였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계연이 호등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호에 부과하는 세금일 가능성이 크다. 즉 호별로 곡식이나 포와 같이 물품을 수취한 세금인 조, 곧 호조(戶調) 수취량을 계산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고려하면, 호별로 일정한 양의 세금을 수취하였을 것인데, 촌별로 수취해야 하는 호조의 총합을 계산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다만 「신라촌락문서」 자체는 인적 자원과 농경지 및 각종 경제 상황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서, 여러 세목에 두루 활용되었을 수도 있다. 계연은 결국 호등을 기준으로 산출된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계연의 계산은 호등 산정 원리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신라촌락문서」를 작성한 목적이 조세 수취를 위한 계연의 산출이라고 한다면, 「신라촌락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여러 항목을 기준으로 호등을 산정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호등 산정의 원리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견해가 있다.
우선 각 호가 보유하고 있는 농경지의 많고 적음에 따라 호등이 산정되었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신라촌락문서」가 여러 세목에 두루 활용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부터 생산 요소 가운데 토지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토지에 부과하는 세목이 중요해진 중세 사회에 들어섰다는 입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신라촌락문서」에서 토지에 대한 정보는 촌에 소재한 전체 전답(田畓)의 총합만을 기재하고 있어 정보가 매우 간략하다. 특히 토지에 세금을 부과할 때 가장 중요한 정보인 실제 농사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다음으로 인적 자원, 곧 가용 노동력의 많고 적음에 따라 호등을 산정했다는 견해이다. 이는 「신라촌락문서」에서 인적 자원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러 항목 가운데 가장 자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 근거이다.
이러한 입장은 「신라촌락문서」가 인두세와 같이 노동력 자체에 부과하는 세금 · 군역 · 요역과 같이 인력 동원에 활용할 목적으로 작성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연결된다. 그러나 실제 인구수 및 경제 활동 인구수가 계연 숫자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라촌락문서」에 기재된 여러 항목 전체, 곧 각호가 소유한 총체적 자산을 기준으로 호등을 산정했다는 견해가 있다. 다만 총체적 자산이라고는 해도,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을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문서에 기재된 여러 항목의 거의 대부분이 호등 산정에 필요한 요소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리고 「신라촌락문서」가 여러 세목에 두루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기보다, 계연을 기준으로 산출된 특정 세목의 총량만을 산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했다는 것은 여전히 토지보다 노동력이 중시되는 고대 사회적 수취제도 아래에서 「신라촌락문서」가 작성되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 자산 기준설은 구체적으로 호등을 산정하는 원리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점 역시 두 번째 입장과 마찬가지로 경제 활동 인구와 계연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한편 촌별 계연을 산출한 이유는 촌별로 수취할 세금의 총량을 계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실무적인 차원에서는 촌의 상위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현 단위에서 각 촌별 수취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당시 각 개별 호가 부담해야 하는 세액을 정하고 아울러 각호별로 제대로 수취되었는지를 확인하지 않았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개별 가호 단위 수취제도가 완전히 자리잡지 않고, 여전히 촌 단위의 공동체적 수취가 이루어지던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라촌락문서」 작성 시점까지 개별 가호 단위의 경제 상황을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농업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여 여전히 이전의 공동체적 수취를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아울러 「울진 봉평 신라비」에서 일종의 형벌로 대노촌(大奴村)에 부담하게 한 ‘공치오(共値五)’가 이러한 계연과 공동체적 납부의 원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연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