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절 ()

목차
관련 정보
고대사
제도
고구려 후기, 『한원(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 12번째 관명(官名)으로 기록된 고구려의 관명.
제도/관직
설치 시기
고구려 후기
내용 요약

과절은 고구려 후기, 『한원(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 12번째 관명(官名)으로 기록된 고구려의 관명이다. 명칭 외에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부절(不節), 또는 불과절(不過節) 같은 계열의 관명으로 파악되는데, 관직명이거나 중국의 유외품과 비슷한 성격으로 추정한다.

목차
정의
고구려 후기, 『한원(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 12번째 관명(官名)으로 기록된 고구려의 관명.
내용

『한원(翰苑)』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 12번째 관명(官名)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정8품에 주4된다. 주2』 고구려전과 주5에서도 과절이 확인된다. 그러나 명칭 외에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다른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과절과 함께 부절(不節), 또는 주1이라는 관명이 확인되는데, 같은 계열의 관명으로 파악된다.

6세기 금석문인 평양성 석각(平壤城石刻)과 주6의 기록에 보이는 ‘괘루개절(卦婁盖切)’, ‘괘루모절(卦婁毛切)’의 개절, 모절도 과절, 부절과 비슷한 계열의 관명일 것으로 추론하기도 하는데, 개절과 모절에 뒤이어 관등(官等)과 인명이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관직명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이와 달리 중국의 주7품(流外品)에 비견하는 견해도 있는데, 고구려 말기에 이어진 전쟁 상황에서 공을 세운 일반민에게 수여한 일종의 주3이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서는 관리들의 입사직(入仕職)으로 파악되는 선인(先人)보다 하위의 관으로 자위(自位)가 확인되는데, 과절이 자위의 선구적 형태였을 것으로 보았다.

참고문헌

원전

『신당서(新唐書)』
『통전(通典)』
『한원(翰苑)』

단행본

이동훈, 『고구려 중·후기 지배체제 연구』(서경문화사, 2019)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연구』(한나래, 2004)

논문

武田幸男, 「高句麗官位制とその展開」(『朝鮮學報』 86, 1978)
주석
주1

고구려 때의 십사 관등 가운데 셋째 등급. 왕명의 출납과 국가의 문서, 장부 등을 맡아보았다.    우리말샘

주2

중국 송나라 때에 구양수ㆍ송기(宋祁) 등이 편찬한 당나라의 정사(正史). 중국 이십오사(二十五史)의 하나로, ≪구당서≫에 빠진 것과 틀린 것을 바로잡아 펴낸 책이다. 225권.    우리말샘

주3

작호(爵號)만 있고 직무상의 일이 없던 벼슬.    우리말샘

주4

낫고 못할 것이 없이 정도가 서로 비슷하게 견주어지다. 앞서거나 뒤서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말샘

주5

중국 당나라의 두우(杜佑)가 편찬한 정서(政書). 상고로부터 당나라 현종(玄宗) 때에 이르기까지 제도의 변천, 정치의 대요(大要) 따위를 연대순으로 9개 부문으로 분류하고 기술하였다. 200권.    우리말샘

주6

‘니혼쇼키’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은 이름.    우리말샘

주7

정일품에서 종구품까지의 유품(流品)에 들어가지 못한 잡직의 품계.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