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5.45m. 현재 관촉사 앞뜰 원래 위치에 보존되어 있으며 조성연대는 보살입상과 같이 968년(광종 19)으로 추정된다.
이 석등의 하대석은 네모난 측면석 위에 둥근 연화대를 놓았는데, 8판의 복련(覆蓮)은 꽃잎 주위에 좁은 테두리가 있어 신라시대 연판과 다른 점을 보이고 있다.
하대 윗면에는 2단의 굄을 새겨서 간주(竿柱)를 받치고 있는데, 간석(竿石)은 원주형으로 상단부와 하단부에는 두 줄의 원대(圓帶)가 마련되었고, 가운데는 세 줄의 원대가 돋을새김되었으며, 중앙부에만 중심의 굵은 원대 위에 네 잎의 복판연화문(複瓣蓮花文)을 새겼다.
상대석(上臺石)은 방형이고, 아랫면은 쌍잎 8판의 앙련대(仰蓮臺)가 있고, 그 밑에는 2단의 받침이 새겨져 하대석과 대하고 있다. 상대 윗면에는 높은 굄대를 마련하고 화사석(火舍石: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을 놓았는데, 화사는 2층으로 형성되었으며 상하 방형을 이루었다.
하부인 주화사(主火舍)는 네개의 우주석(隅柱石)만을 세워서 옥개(屋蓋)를 받치도록 하였으므로 화창(火窓)은 면마다 통하게 되었고, 창구는 널찍한데 상부의 화사는 형식적으로 구성되어 전·후면에만 화창을 모각하였다.
네모난 옥개석은 아랫면에 2단의 낮은 받침이 있고, 각 면의 처마는 가볍게 반전하였으며, 네 귀퉁이의 전각부(轉角部)에는 삼산형(三山形)의 귀꽃이 새겨져 더욱 경쾌한 인상을 주고 있다.
낙수면(落水面)은 중후하나 정상부가 좁고, 네 귀퉁이의 합각머리가 뚜렷하면서 처마 끝에 이르러서는 평박(平薄)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가벼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상층의 옥개석도 같은 형태로서 전각부에 귀꽃이 새겨지고 처마 끝이 평박하며 상하층의 체감률이 심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옥개석 정상에는 한 개의 돌로 조성한 보주(寶珠)가 놓였는데 그 조각수법은 둔중한 편이며, 각 부에 비하여 간주도 둔중하다.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고려의 석등으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