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시중(時仲). 구신충(具信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구이(具頤)이고, 아버지는 정랑(正郎) 구수연(具壽延)이며, 어머니는 단산정(丹山正) 이수생(李穗生)의 딸이다. 작은아버지인 군수 구수복(具壽福)에게 입양되었다.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1552년(명종 7)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58년에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承文院權知)로 있다가 1567년 정언(正言)이 되었다.
1568년(선조 1) 이조좌랑으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뒤 다시 정언·수찬(修撰) 등을 거쳤다.
그러나 이듬해 이조좌랑으로 있을 때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 등의 당여(黨與)였기 때문에, 인물됨이 청요직(淸要職)에는 맞지 않는다는 김개(金鎧)의 상소에 의해 체직당하였다. 그 뒤 진주목사로 나가서 최영경(崔永慶)과 함께 덕천동에 터를 잡고 서원을 세우고 후진양성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