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31종의 군관직 가운데 하나이다. 11종의 군관직 당주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524년(법흥왕 11)에 설치되었다. 일길찬(一吉飡)부터 내마(奈麻)에 이르는 관등 소지자가 임명되었다.
정원은 19명으로 왕도(王都)에 1명, 군호 육정(六停)을 구성하는 6개 부대와 구서당(九誓幢)의 9개 부대, 삼무당(三武幢)의 3개 부대에 각 1명씩 배속되었다. 군사감과 더불어 신라 23군호 가운데 13번째 군호인 군사당의 지휘관으로 유추되지만, 자세한 관계는 알 수 없다.
군사당주의 설치 시기와 관련하여 두 가지 기록이 있다. 하나는 제군관조에서 군사당주를 524년(법흥왕 11)년에 설치하였다는 기록이고, 또 하나는 범군호 군사당조에 군사당을 604년(진평왕 26)에 설치하였다는 기록이다. 이 두 기록에 관해 524년(법흥왕 11)에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맞다고 보는 견해와, 이를 법당주의 오기로 이해하고 군사당이 설치된 604년(진평왕 26)을 설치 시기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
다른 군관직 당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설치되었으므로 그 설치 시기를 군사적 지방관인 당주의 설치 시기로 바꾸어 보거나 혹은 법당주의 설치 시기로 이해하면서 군사당주의 설치 시기를 군사당이 설치된 604년(진평왕 26)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금석문과 목간 등 새로운 관련 자료가 출현하였고, 또 6세기 전반 신라의 병제 정비 상황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신라에서 상급 군관들은 맹수의 가죽이나 수리의 깃으로 만든 화(花)를 깃대 위에 달아 그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삼았는데, 군사당주의 화는 큰 호랑이 꼬리로 만들었으며, 길이는 1자[1자=30.30303㎝] 8치[1치=3.03㎝]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