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초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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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출산에 관한 궁중 고유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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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출산에 관한 궁중 고유의 의식.
내용

이러한 궁중의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매우 오래된 출산풍속에서 유래된 것이며, 그것이 궁중의식으로 제도화한 것은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비빈(妃嬪)에게 아기를 낳을 징후가 보이면, 태의원제조(太醫院提調)는 모든 집사관을 거느리고 산전방(産殿房 : 아기를 낳는 방)에 들어가 길한 방향에 출산할 자리를 마련하고, 산전방의 사방에 순탄 출산을 비는 부적을 붙이며, 헌청(軒廳)에 방울을 달아 유사시에 의관을 부를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다음에는 현초(顯草 : 산후의 거적을 처리함)할 문을 정하고 그 대들보에 못을 박아 붉은 끈을 드리워 두었다가 출산이 끝나면 그 못에 매어달아 7일이 지난 뒤 청상(廳上)으로 옮겨놓았다.

또한, 조신 가운데 자식이 많고 가정에 재난이 없는 사람을 권초관(捲草官 : 출산 후 거적 자리 등을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처리하는 감독관)으로 뽑아 은·쌀·비단·실 등을 갖추어 분향하여 명을 빌고, 그 고석(藁席 : 아기를 낳은 거적자리)을 칠궤(漆櫃 : 옻칠을 하여 장식한 상자)에 넣어 붉은 보자기로 싸서, 남자의 경우 내자시(內資寺), 여자의 경우 내섬시(內贍寺)의 창고에 보관해둔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집필자
홍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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