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이술(而述).
1568년(선조 1)에 벼슬길에 들어서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이 되었다. 그 뒤 이조판서 홍담(洪曇)의 천거로 우승(郵丞: 驛站의 長)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안집사(安集使) 김륵(金玏)의 부름을 받고 의병장이 되었다. 군량(軍糧)을 모으고 무기를 수습하여 의병장 임흘(任屹)·김용(金涌) 등과 왕래하면서 적을 물리칠 것을 꾀하였다.
1593년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 있으면서 별장 권응수(權應銖), 방어사(防禦使) 김응서(金應瑞) 등과 약속하여 적진에 나아가 적의 40여 막사를 불질렀다. 이 전공으로 선무이등공신(宣武二等功臣)에 책록되었다.
1595년 훈련원정(訓鍊院正)에 제수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사퇴하였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등이 애석하게 여겨 여러 번 발탁하여 등용하려 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