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인물형 토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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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기마인물형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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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주제로 하여 주로 신라 · 가야지역에서 제작된 삼국시대의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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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주제로 하여 주로 신라 · 가야지역에서 제작된 삼국시대의 토기.
내용

우리나라에서 말은 삼국시대부터 벽화나 토기의 문양·토우 등에 나타나고 있으나, 기마인물형토기에서만큼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묘사된 예는 없다.

지금까지 조사된 기마인물형토기는 몇 점에 불과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예는 1924년에 발굴조사된 경주 금령총(金鈴塚) 출토품을 들 수 있다. 금령총에서는 모두 2점의 기마인물형토기가 출토되었다.

그 형태를 보면 말은 네모난 받침판 위에 반듯이 서있고 입에는 재갈을 물었으며, 몸에는 고삐·안장·발걸이·다래·말띠드리개 등을 갖추고 있으면서 꽁무니 쪽에 깔때기모양의 귀때가 달리고, 목 아래 가슴 쪽에 대롱이 달려 그릇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말 위에는 한 사람의 무사가 성장을 한 채 발걸이에 발을 걸고 안장에 앉아 말고삐를 쥐고 있다. 전체 높이는 23.4㎝이고, 길이는 29.4㎝이다.

다른 한 점 역시 그릇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앞의 예와 큰 차이는 없으나 정교함에서 크게 떨어지고, 말 탄 사람은 무사이기는 하지만 앞의 예와 달리 성장한 모습이 아니어서 앞의 정교한 것은 이 무덤의 주인공을 나타내는데 반해 이것은 그 시종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한편, 가야지방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토기는 자연유(自然釉)가 덮일 정도로 잘 구워진 것이다. 방패를 든 무사를 태우고 있는 말 역시 갑옷을 입고 있어서 전쟁에 임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갑옷을 걸친 말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도 나타나 있어 삼국시대 말의 무장은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와 같은 말의 무장 전통은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전통은 크게는 북방계 스키타이의 말의 무장 전통과도 관련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신라마각문토제품(新羅馬刻文土製品)과 가야개마무인상토기(伽耶鎧馬武人像土器)」(이은창, 『신라가야문화(新羅伽耶文化)』11, 1980)
「마각문토기(馬刻文土器)와 마형토기(馬形土器)」(이은창, 『고고미술(考古美術)』138·139, 1978)
「신라(新羅)의 토우(土偶)」(이난영, 『교양국사총서(敎養國史叢書)』22, 1976)
「삼국시대동물형토기시고(三國時代動物形土器試考)」(김원룡, 『미술자료(美術資料)』6, 1962)
집필자
임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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