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론별기 ()

불교
문헌
통일신라시대, 신라 승려 원효(元曉, 617~686)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주석서 중 하나.
이칭
이칭
해동별기(海東別記),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
문헌/고서
편찬 시기
통일신라시대
저자
원효
권책수
1권(분권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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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기신론별기(起信論別記)』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대한 신라 승려 원효(元曉, 617~686)의 주석서 중 하나이다. 이 책은 『대승기신론』 전체에 대한 주석이 아닌 입의분(立義分)과 해석분(解釋分)만 집중 풀이한 주석서이다.

정의
통일신라시대, 신라 승려 원효(元曉, 617~686)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주석서 중 하나.
개설

『기신론별기(起信論別記)』는 1권 혹은 본 · 말로 분권한 2권으로 전한다. 『해동별기(海東別記)』라고도 한다. 원효는 『기신론』에 대한 5부의 저술을 남겼는데, 현재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이 책만 전하고 있다. 이 책은 『기신론』의 5장인 ‘인연분(因緣分)’ · ‘입의분(立義分)’ · ‘해석분(解釋分)’ ·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 중 일심(一心) · 이문(二門) · 삼대(三大) 등 『기신론』의 이론적 핵심을 다룬 ‘입의분’과 근본 뜻을 해석한 ‘해석분’의 주석만 담고 있다.

내용

원효는 이 책에서 『기신론』의 중심 내용과 개념을 중점적으로 정리하였다. 특히 중요한 개념이나 논리적 난점이 있는 부분은 문답을 반복하는 형식을 취하여 의문점을 해결하고 있다.

『기신론』의 대의를 밝힌 권두의 글은 『기신론』의 사상사적 위치와 특징을 깊이 있고 명쾌한 문체로 밝히고 있다. 특히 원효는 『기신론』이 대승불교의 두 가지 큰 흐름인 중관학파(中觀學派)의 '부정 위주의 사상'과 유식학파(唯識學派)의 '긍정 위주의 사상'을 종합한 것이라 하였다. 원효는 이와 같은 긍정과 부정의 사상을 '화쟁(和諍)'으로 이끌었다.

‘입의분’을 다룬 부분에서는 일심 · 이문 · 삼대의 개념을 『기신론』 본문에 따라 간결하게 설명하였다.

‘해석분’은 크게 ① 현시정의(顯示正義), ② 대치사집(對治邪執), ③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으로 나뉜다. 이 중 현시정의를 의문(義門)과 입문(入門)으로 나누고, 의문은 다시 진여문과 생멸문을 상세히 설명한 법장문(法章門)과 삼대를 해석한 의장문(義章門)으로 나누어서 해설하였다. 법장문에 대한 설명이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치사집에서는 인아집(人我執)과 법아집(法我執)을 다스리는 방법을 간단히 서술하였다. 분별발취도상에서는 보살수행의 계위(階位)를 3종 발심(發心)에 따라서 설명하였다.

이 중 법장문에서는 일심 · 이문의 의미를 총체적 측면과 분별적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총체적 측면에서 진여문과 생멸문의 관계는 “적멸(寂滅)을 일심이라 하고 일심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한다”라고 한 『능가경(楞伽經)』의 문장을 인용하여 해석하였다. 즉 생멸(生滅)이 없는 일심을 진여문이라 하였으며, 본각(本覺)인 일심의 체(體)가 무명(無明)에 의해서 생멸문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생멸문에는 여래의 본성인 여래장이 감추어져 있고, 진여문과 생멸문은 그 본성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 분리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진여문은 통상(通相)으로 일체를 포섭하고, 생멸문은 별상(別相)으로 일체를 포섭한다고 보았다. 그는 통상과 별상의 화합을 흙과 기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다. 즉 흙은 기와의 통상으로 흙을 떠나서 기와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진여문과 생멸문은 서로 의존하며 화합한다고 본 것이다.

이어서 문답식으로 이 문제에 대한 의문점을 풀이하였다. 특히 유식학파의 삼성설(三性說)을 통해 생멸문과 진여문의 차이를 독창적으로 해설하였다. 여기에서 원효는 “만일 삼성설의 불일불이(不一不異)한 이치를 이해할 수 있다면 모든 논쟁은 화쟁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어 그의 화쟁설의 근거가 삼성설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원효는 심생멸문을 각(覺)과 불각(不覺)의 관계로 설명하였다. 이를 통해 본각의 상태에서 불각의 상태로 타락해 가는 과정과 불각의 상태에서 본각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수행의 과정 등을 상세히 주석하였다.

서지사항

『기신론별기』는 나라시대에 일본에 전해져 에도시대에 판각된 본이 오늘날까지 유통되고 있다. 근대에는 중국의 금릉각경처(金陸刻經處)에서 이 간본(刊本)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1899년 『대승기신론소, 별기 회본』을 제작하였다. 이후 한국에서는 주로 이 회본을 활용하게 되었다. 최근 김천학에 의해서 기존 유통본보다 약 340년 앞서 필사된 소묘지(稱名寺) 소장 『기신론별기』 사본이 학계에 보고되었다.

성립 문제

『기신론별기』의 성립과 관련해서는 학자마다 이설(異說)이 있다. 이시이 코세이[石井公成]와 후쿠시 지젠[福士慈稔]은 인용된 문헌에 근거하여 『기신론별기』 다음에 『대승기신론소』가 저술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원효가 『대승기신론소』를 저술하기 전에 그 초고로 『기신론별기』를 저술한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요시즈 요시히데[吉津宜英]는 원효가 45세(662년)가 되기 전에 『기신론소』와 『기신론별기』를 거의 동시에 성립하였으며, 『기신론별기』 쪽이 더 진전된 사상을 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최근 최연식은 현존하는 『기신론별기』가 사실은 원효의 저술이 아니라 후대의 인물들이 원효의 『기신론소』와 법장(法藏)이 찬술한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를 편집한 문헌일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기신론별기』는 원효 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살펴볼 수 있는 원효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이 책은 『기신론』을 논리정연하게 해석한 명저로 후대의 『기신론』 해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중국 당나라 화엄종을 집대성한 법장(法藏, 643~712)은 『대승기신론의기(大乘起信論義記)』를 저술하면서 『기신론별기』를 거듭 인용하고 이 책의 해석 방법을 따르는 등 후대의 『기신론』 이해를 위한 길잡이 구실을 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福士慈稔, 『新羅元曉の研究』(大東出版社, 2004)
이기영, 『원효사상Ⅰ』(원음각, 1967)
조명기, 『신라불교의 이념의 역사』(신태양사, 1962)

논문

고익진, 「원효의 기신론소·별기를 통해본 진속원융무애관과 그 성립이론」(『불교학보』 10, 1973)
김천학, 「쇼묘지(稱名寺) 소장・가나자와(金澤)문고 관리 원효 『기신론별기』의 기초연구」(『한국사상사학』 56, 2017)
요시즈 요시히데, 「元曉 『大乘起信論別記』의 위치 여부」(『원효학연구』 10, 2005)
최연식, 「원효의 『대승기신론별기』 성립에 대한 새로운 이해」(『불교학연구』 52, 2017)

인터넷 자료

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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