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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개념
수행을 통해 삼라만상의 실상과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을 가리키는 불교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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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행을 통해 삼라만상의 실상과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을 가리키는 불교교리.
내용

이 사상은 ≪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에서 최초로 천명되었고, 신라의 원효(元曉)가 집대성하고 심화시켰다. ≪기신론≫에서는 인간의 모든 심리활동의 원천을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 아뢰야식이 맑고 참되고 한결같은 본연의 상태만을 유지하지 못하고 오랜 옛날부터 익혀 온 습기(習氣) 때문에 더러움, 즉 무명(無明)에 물들어 있다고 한다.

아뢰야식은 본래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그 본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무명의 습기 때문에 그 본바탕이 고스란히 드러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효는 이때의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의 본바탕을 진여심(眞如心) 또는 각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각이 모든 중생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본각(本覺)이라고 하고, 또 무명의 습기 때문에 가려 있어 나타나지 않을 때는 불각(不覺)이라고 하며, 한 번 어떤 계기를 만나서 그 본바탕이 드러나기 시작할 경우에는 시각(始覺)이라고 부른다고 정의하였다.

본각은 우주 법계(法界)의 근본 본체인 진여(眞如)의 본질이며, 중생의 본체로서 여래장(如來藏:여래가 될 수 있는 성품)이라고 한다. ≪기신론≫에 의하면, 이 본각의 본체는 헛된 생각을 떠나 있어서 불각의 어두움이 없을 뿐 아니라, 지혜의 광명이 있어 법계를 두루 밝히고, 평등하여 불이(不二)라고 하고 있다. 원효는 이 본각을 수염본각(隨染本覺)과 성정본각(性淨本覺)의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하고 있다.

수염본각은 영구불멸한 본각이 세속적인 환경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핀 것으로, 여전히 맑고 깨끗하며 지혜로운 모습[智淨相]과, 속된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모습[不思議業相]의 두 가지로 다시 분류하고 있다.

이 둘은 진여심이 움직여 행동화될 때 나타나게 된다. ‘지정상’은 더럽혀진 환경 속에서의 본각이 지니고 있는 모습이고, ‘부사의업상’은 본각이 그 더럽혀진 환경을 정화할 때 나타내는 능력을 지적한 것이다.

원효는 지정상은 참되고 한결같은 진여의 본체로부터 솟아나는 부단한 작용에 의지해서, 아뢰야식 속의 무명으로부터 끊임없이 생겨나는 그릇된 생각들을 없애며, 진리 자체를 드러내 보일 수 있고 인간을 지혜롭게끔 하는 본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본각 속에는 지정상을 바탕으로 해서 모든 아름답고 훌륭한 세계를 창조해 갈 수 있는 많은 자질과 요소들을 영원히 흘러나오게 하며, 여러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으로 하여금 이익을 얻게 하는 것이 생각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부사의업상이라고 한다고 주장하였다.

원효를 비롯한 많은 주석가들이 수염본각의 지정상과 부사의업상을 비교 설명한 것을 도시하면 [그림 1]과 같다.

또한, 원효는 세속적인 환경 속의 망염(妄染)과는 무관한 성정본각을 거울에 비유해서 네 가지 뜻으로 풀이하였다.

성정본각은 ① 티없는 거울과 같아서[如實空鏡] 그릇된 모든 생각이 사라져 있고 무엇이든 그 모습이 온전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다. ② 지혜롭게 비추는 거울[因熏習鏡]과 같아서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속에 조금도 손상됨이 없이 나타날 뿐 아니라, 영원불변한 진리와 지혜의 빛을 발현한다. 그 진리는 어떠한 더러움에 의해서도 물들지 않으며, 그 지혜는 부족한 데가 없이 온전하게 중생들에게 작용을 가하는 것이다.

③ 자유의 거울[法出離鏡]과 같아서 세상의 속박과 장애로부터 벗어나 있다. 번뇌로 말미암아 생긴 속박, 분별지(分別知)로 말미암아 생긴 장애가 제거되었고, 어리석음이 없어진 까닭에 순수하고 맑은 그 모든 요소만이 가득 차 있다.

④ 아직도 잘 못 보는 것을 잘 보게 하는 거울[緣熏習鏡]과 같아서 중생들 스스로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착한 외향을 더욱 굳건히 하도록 그들의 마음가짐에 적응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정본각에 대한 원효의 설을 도식화하면 [그림 2]와 같다.

불각은 만유의 진상을 깨닫지 못하는 중생의 밝지 못한 마음이다. 중생의 동요되고 전변(轉變)하는 마음은 한 가지 모습으로만 규정될 수 없는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이와 같은 불각의 양상을 원효는 근본이 되는 불각[根本不覺]과, 근본불각으로부터 파생된 많은 가지로서의 불각[枝末不覺]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지말불각을 다시 단순한 모습과 복잡한 모습의 둘로 나누고, 단순한 모습에 세 가지, 복잡한 모습에 여섯 가지 양상이 있음을 밝혔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세 가지 양상을 3세(三細)라고 부르고, 복잡다단해진 거친 양상들을 6추(六麤)라고 한다. 이들은 근본불각인 무명 때문에 파생하는 미혹된 마음의 전개를 설명하는 것으로, 3세는 무명업상(無明業相)·능견상(能見相)·경계상(境界相)이며, 6추는 지상(智相)·상속상(相續相)·집취상(執取相)·계명자상(計名字相)·기업상(起業相)·업계고상(業繫苦相)이다.

근본불각인 무명은 있는 그대로의 진여가 하나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있는 그대로를 알지 못하는 무명 때문에 3세 6추 등의 그릇된 생각들이 일어나서 고(苦)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만, 그러한 망념들은 실체가 없으며, 본각을 의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말불각은 근본불각인 무명이 잠재적인 충동력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3세 중 무명업상은 무명으로 인한 첫번째 동요의 모습으로, 주관과 객관이 대립하기 이전의 상태이며, 주관과 객관이 나누어지지 않은 순수한 동적(動的)인 상태이다. 두번째의 능견상은 무명업상으로부터 주관과 객관이 이원화되기 직전의 주관적인 부분을 지칭하는 것이다.

능견이란 ‘내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즉, 충동력에 의해서 마음이 동요하므로 외계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경계상은 능견상으로 인식하는 대경(對境), 주관 앞에 나타난 객관계를 뜻한다.

원효는 이 3세의 상을 다시 업상(業相)·전상(轉相)·현상(現相)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들 셋은 무명으로 인한 충동력에 의해 찰나 사이에 움직이기 시작하여 미세하나마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고 하였다. 주객이 분별되고 나면 다음과 같은 6추의 상이 일어난다.

① 지상이 생겨난다. 지상의 지(智)는 가장 낮은 단계의, 분별·식별 작용을 뜻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객관인 대상에 대하여 시비와 애증의 분별을 일으키고, 염정(染淨)과 선악의 구별을 일삼게 된다. 거울을 능견상에 비한다면 거기에 비친 그림자는 경계상이며, 그 경계를 실재하는 것이라고 분별하는 것이 지상이다.

② 상속상은 지상에서 생긴 애증 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락(苦樂) 등을 생각하는 상태이다. ③ 집취상은 고락의 판별 뒤 대상에 대해 최초로 집착하여 스스로 얽매이게 되는 상태이다. ④ 계명자상은 허망한 집착이 더욱 커지면서 다시 그 위에 헛된 명자어구(名字語句)를 내세우고 더욱 조잡한 아집을 내세우게 되는 상태이다.

⑤ 기업상은 지금까지 마음속으로만 전개되어 오던 것이 강한 집착 때문에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서 선악의 업(業)을 짓는 것을 가리킨다. ⑥ 업계고상은 선악의 업이 원인이 되어서 중생이 고통 속에 속박되어 자재롭지 못한 경계에 처하게 됨을 뜻한다. 이 3세 6추는 중생이 타락의 상태로 유전(流轉)해 가는 모습이다.

시각은 불각의 상태에서 본각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상의 과정이다. 이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과관계 속에서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마음의 환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환멸의 과정은 사람들의 환경이나 소질·마음가짐·노력 등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크게 불각·상사각(相似覺)·수분각(隨分覺)·구경각(究竟覺)의 네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이것을 시각의 ‘4위(四位)’라고 하는데, 위라는 것은 단계란 말도 되지만 마음이 정화된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원효는 시각의 4위를 다시 대별해서 완전한 깨달음[究竟覺]과 불완전한 깨달음[非究竟覺]의 둘로 나누었다. “일심의 원천[心源]을 깨달았으므로 구경각이라 하고, 일심의 원천을 깨닫지 못했으므로 비구경각이라고 부른다.”고 하였으며, 시각의 4위 중 불각·상사각·수분각을 비구경각으로 보았다.

시각의 4위 중 최초 단계인 불각은 무아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여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길로 들어선 범부들이 이전의 그릇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던 잘못을 알고, 다시는 좋지 않은 생각들을 일어나지 않게 하는 단계이다.

두번째 단계의 상사각은 성문(聲聞)과 연각(緣覺) 등 이승(二乘)의 수행자와 이제 금방 수도의 길에 들어선 초발의보살(初發意菩薩)들이 망념중에 나타나는 변이의 모습[異相]인 한없는 욕심[貪], 시기와 질투와 분노하는 마음[瞋], 자기 자신의 본체를 모르는 어리석음[癡]·교만[慢]·의심[疑]·고집[見] 등의 그릇됨을 깨닫고, 그들에 대하여 분별하고 집착하는 모습을 버린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깨달음이 외형상으로 볼 때는 완전한 깨달음과 비슷하므로 상사각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부패한 마음의 양상을 없앤다 해도 아직도 더 깊은 마음속에 있는 그릇된 생각들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세번째 단계인 수분각은 법신보살(法身菩薩)이 망념으로 인해 생긴 ‘나’라는 고집이 모든 것 속에 강하게 뿌리박고 있음을 깨닫고, 나와 남을 구별할 때 일으키는 육추의 거친 모습들을 모두 버릴 때 얻게 되는 위치이다. 원효는 이 경지를 나도 공이요[我空], 내 것이라고 내세우는 객관적인 사물도 공[法空]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다.

고유성 또는 절대성이 없음을 상징하는 아공과 법공을 깨달으면 아치(我癡:나를 모르는 어리석음)·아견(我見:나를 내세우는 고집)·아애(我愛:나만을 중히 여기는 생각)·아만(我慢:나에 대한 교만) 등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러한 깨달음을 거의 다된 깨달음, 즉 수분각이라고 부른다.

마지막 단계인 구경각은 본각과 동일한 것이다. 보살의 모든 수행이 끝나 제10지(地)의 등각위(等覺位:온전한 깨달음의 지위)에 이르면, 모든 방편이 원만하게 갖추어지고 시각의 최후 일념은 본각과 서로 일치하게 된다. 그때 보살은 근본무명이 진여본각의 일심을 움직여서 생멸을 일으킨 것임을 깨닫게 되며, 모든 번뇌의 근원인 생상(生相)마저도 제거하게 된다.

근본무명을 없앴으므로 마음의 본성을 보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마음이 영원히 한결같은 불(佛)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시각은 본각에 그 근본을 두고, 본각에서 유전하여 불각의 상태로 된 것을 다시 본각으로 환멸케 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각의 사상은 생멸하는 마음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으로, 마음이 각의 상태가 되면 부처요, 불각의 상태가 되면 중생이라는 불교의 근본사상을 가장 체계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또한, 마음의 생멸에는 반드시 좋지 않은 생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명에 의하지 않는 맑고 밝은 생멸, 진여한 마음 그 자체가 지닌 불가사의한 힘 때문에 본각의 마음이 어떤 계기로 인해 크게 또는 작게 발현될 수 있다.

그때의 각을 시각이라고 한 것이지만, 시각의 마지막 단계인 구경각과 본각은 사실상 별개의 것이 아니다. 본각은 본래 근본으로 있는 상태를 말한 것이고, 시각은 어떠한 좋은 인연을 만나 불각을 없애면서 발현되기 시작한 본각을 포착하여 달리 말한 것이라고 원효는 결론을 맺고 있다.

참고문헌

『대승기신론소』-별기-
『원효사상』Ⅰ-세계관-(이기영, 홍법원, 1967)
『한국의 불교사상』(이기영, 삼성출판사, 1976)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별기』(은정희, 일지사, 1991)
집필자
이기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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