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고려대장경』·『신수대장경』·『속장경』 등에 수록되어 있다. 원효(617 ~ 686)가 이 경에 대하여 종요(宗要)를 쓰기 전에 중국에서는 담란(曇鸞)·영유(靈裕)·혜원(慧遠)·길장(吉藏) 등이 주소(註疏)를 낸 바 있다.
원효의 이 종요는 혜원·길장의 주소와 신라의 후학 경흥(憬興)의 것과 더불어 『무량수경』의 4대 주석서로 존중되어 왔다. 원효는 화엄(華嚴)을 존중하는 입장에 서 있었으므로 『무량수경』에 대하여 해석할 때도 그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매우 독보적인 내용을 그 종요에 담고 있다.
이 책은 대의(大意)와 경지종치(經之宗致), 약인분별(約人分別), 취문해석(就文解釋)의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취문해석은 구분만을 해놓았을 뿐 구체적인 해설은 없다. 따라서 본문은 세 부분에 국한된다.
<대의>에서는 다른 모든 원효의 저술에서와 마찬가지로 원효사상의 핵심이 담겨 있다. 요컨대, 정토(淨土)와 예토(穢土:우리가 사는 속세)는 ‘본래일심(本來一心)’에 있다고 말한다.
“무릇 중생의 심성(心性)은 융통무애하니, 허공과 같이 넓고, 거해(巨海)와 같이 충만하다. 허공과 같으므로 그 체(體)는 언제나 평등하며, 어떤 특별한 상(相)이 있을 수 없다. 어찌 정토와 예토가 있겠는가? 또 거해와 같으므로 그 성(性)이 윤활하여 연(緣)을 따라 순응하되 거역함이 없다. 어찌 동(動)·정(靜)의 차별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번뇌망상의 바람을 타면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떨어져 유전하며, 고통의 물결 속에 부침(浮沈)하면서 오래오래 흘러 내려가고, 혹 선근(善根)을 계승하여 탁류를 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고 피안(彼岸)에 머물러 고요하기만 하다. 만약, 이와 같이 유전하며 움직이고, 또 이와 같이 고요하기만 하다면 이는 다 큰 꿈일 뿐이다. 정말 깨달은 입장에서 말하자면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는 것이다. 예토정국(穢土淨國)이 본래 일심(一心)이요,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결국 두 대립되는 극이 아니다.”
원효는 이와 같이 말하면서 석가모니가 이 사바세계에 나타나 오악(五惡)을 경계한 것이나, 아미타불이 저 극락정토를 다스리면서 삼배(三輩: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를 이끌어 그곳에 태어나게 하시는 일이 다 중생제도의 방편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 『무량수경』을 “보살장교의 격언이요 불토인과의 진전이다(菩薩藏敎之格言 佛土因果之眞典也).”라고 규정하였는데, 이는 원효의 『무량수경』에 대한 견해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또 원효의 극락관은 <대의> 중 다음 구절에도 잘 나타나 있어 주목을 요한다.
“법향(法響:법의 울림 소리)을 듣고는 무상(無相)에 들고, 불광(佛光)을 보고는 무생(無生)을 깨닫는다. 무생을 깨달음으로 태어나지 못하는 바가 없으며, 무상에 듦으로 상(相)이 나타나지 못하는 바가 없다.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안락하니 생각으로 헤아려 볼 수 있는 바가 아니며, 끝도 없고 한계도 없으니 어찌 언설(言說)로 능히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이 말은 원효가 결코 서방 극락정토를 어떤 일정한 공간이나 형상으로 국한시켜 보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경지종치에서 원효는 『무량수경』의 핵심적 교설은 정토의 인과를 밝히는 데 있고, 그 의도하는 바가 섭물왕생(攝物往生:어떻게 왕생하게 하느냐 하는 문제의 해명)에 있다고 말한다. ‘정토의 인과’에서는 먼저 과(果)로서의 정토에는 어떠한 덕(德)들이 있는가를 4개 부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즉, 첫째 정부정문(淨不淨門)에서는 ① 금강삼매(金剛三昧)에 들지 못한 보살이 주(住)하는 곳은 과보토(果報土)이므로 그곳은 정토가 못 되고, 오직 불(佛)이 거(居)하는 곳만이 정토라 하며, ② 칠지(七地) 이하 보살이 머무르는 곳은 아직 정토라 할 수 없고, 팔지(八地) 이상 보살이 주하는 곳이라야 일향(一向)으로 삼계(三界)의 일을 벗어났으므로 정토라 한다.
③ 범부(凡夫)·이승(二乘)이 잡거(雜居)하는 곳은 청정법계(淸淨法界)라 할 수 없고, 오직 대지보살(大地菩薩)이 들어가 사는 곳만이 청정법계라 하였으며, ④ 삼취중생(三聚衆生)이 고생하며 사는 곳은 정토가 아니라 예토이며, 오직 정정취(正定聚)가 거하는 곳만이 정토라 하였다.
둘째, 색무색문(色無色門), 즉 정토에 색이 있느냐 무색이냐 하는 문제에서는 앞의 인·과 등 네 가지 경우 중 첫째 경우에만 자수용토(自受用土)요, 나머지 세 경우에는 다 타수용토(他受用土)이므로 이 타수용토는 물론 색이 있지만, 앞의 자수용토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고 말한다. 그 세 가지 설이란 다음과 같다.
① 『보살영락본업경(菩薩瓔珞本業經)』에서와 『기신론(起信論)』에서는 이 자수용토 또는 자수용신(自受用身)에는 색상(色相)이 있을 수 없는 법성정토(法性淨土)라 하고, ②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이나 『화엄경』, 그리고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에서는 이 자수용신에 장애가 없는 미묘한 색이 있고 육진(六塵)의 빼어난 경계가 다 갖추어져 있다.
③ 보불신토(報佛身土)인 이 자수용신에는 정상귀원(正相歸源:진정한 실상인 근원에 돌아감)인 ①의 경우와, 종성성덕(從性成德:진성에서부터 공덕이 이루어짐)인 ②의 경우가 있어 위의 두 가지 설은 다 틀리지 않는 주장이라고 하고 있다. 이 가운데 ③은 원효 자신의 견해로 보인다.
셋째, 공불공문(共不共門), 즉 정토가 공통적인 과[共果]냐, 공통적이 아닌 과[不共果]냐 하는 문제에서는 정토에 내토(內土)와 외토(外土)의 두 가지가 있는데, 내토 즉 정보토(正報土)는 공통적이 아닌 과이지만, 외토 즉 의보토(依報土)는 공통적인 과라고 하며, 『해심밀경(解深密經)』·『유식론(唯識論)』·『본업경(本業經)』·『유가론(瑜伽論)』·『섭대승론』 등의 말을 인용, 설명한다.
넷째, 누무루문(漏無漏門)에서는 『유가론』의 유루·무루설을 인용, 네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하고, 이를 적용하여 제불(諸佛)의 정토와 보살의 정토의 누·무루 문제를 서술하고 있다. 그 네 가지 경우란 ① 일향유루(一向有漏)인 경우, ② 일향무루(一向無漏)인 경우, ③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한 경우, ④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닌 경우이다.
정토의 인행(因行)에 대하여는 성변인(成辨因)과 왕생인(往生因)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성변인이란 ‘자신의 힘으로 이룩하는 인[自業因力所成辨]’을 말하며, 왕생인이란 여래의 본원력(本願力)에 의하여 감화를 입어 수용(受用)하는 것으로, 비단 정보(正報:자기의 몸)의 장업만이 아니라 의보정토(依報淨土:객관적인 주위의 정토)를 갖추게끔 감응을 입는 것을 말한다.
성변인은 ① 본래의 무루한 종자로서의 우리 마음과, ② 무분별지(無分別智)·무분별후득지(無分別後得智) 때문에 생긴 선근(善根)이 출출세선법(出出世善法)이 되어 정토를 이루는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왕생인은 『관무량수경』에서 설하는 16관과 『왕생론』에도 설하는 5문행(五門行), 이 경에서 말하는 삼배인(三輩因)이 그것이라 한다.
원효는 상·중·하 삼배가 짓는 인(因)에 대하여 언급하고, 그 인은 요컨대 원(願)과 행(行)의 화합(和合)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인을 정인(正因)과 조인(助因)으로 나누면서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말하는 것이 곧 정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무상보리심을 말하는 데서는 수사발심(隨事發心)과 순리발심(順理發心)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왕생인의 조인(助因)으로서 언급한 하배(下輩)의 십념(十念)에 대해서도 원효는 독창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무량수경』의 십념에는 『관무량수경』의 십념과는 달리 숨은 뜻[隱密義]과 드러난 뜻[顯了義]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숨은 뜻을 『미륵보살발문경(彌勒菩薩發問經)』의 설명을 인용, 다시금 보살행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약인분별은 어떤 사람이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가를 분별하는 부분이다. 삼취중생(三聚衆生)이란 정정취(正定聚)·부정취(不定聚)·사정취(邪定聚) 세 부류의 인간을 뜻하는 말이지만, 원효는 여기서 『무량수경』의 “그 나라에 가서 태어나는 중생은 모두 정정취에 주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불토에는 사정취나 부정취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구절에 의거, 『보성론(寶性論)』을 인용하여 정정취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한다.
그는 또 『유가론(瑜伽論)』에 의거하여 정정취에는 본성정정취(本性正定聚)와 습성정정취(習性正定聚)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무량수경』에 “만약에 중생들 중 의혹심을 가지고 공덕을 닦으며 그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 불지(佛智)·불사의지(不思議智)·불가칭지(不可稱智)·대승광지(大乘廣智)·무등무륜최상승지(無等無倫最上勝智)를 알지 못하고 의심하고 믿지 않으면서도, 죄와 복을 믿고 선본(善本)을 닦아 그 나라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 나라에 태어나지만, 500년 동안 삼보를 보거나 듣지 못하고 벽지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라고 한 것과 관련하여, 불사의지(즉, 成所作智)·불가칭지(즉, 妙觀察智)·대승광지(즉, 平等性智)·무등무륜최상승지(즉, 大圓鏡智)의 달성이야말로 정토 구현의 요체(要諦)임을 강조하고 있다.
원효는 이러한 4지(智)를 모르거나 의심하는 중생을 4의혹 중생이라고 하면서 4지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가하였다. 원효에 의하면 일심의 근원이 무량수불의 정토이다. 이 종요는 이러한 사실을 말해 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저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