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헌(奇自獻)의 서종제(庶從弟)로서 천얼(賤孼) 출신이다. 이문빈(李文賓)의 사위가 되어 궁중에 친하여졌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반란 때 휘하장수로 가담하였으나, 관군에게 패하여 불리해지자 이수백(李守白)과 함께 이괄·한명련(韓明璉)의 목을 베어 바쳤다.
조정에서는 이괄을 죽이는 자를 포상하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반란에 적극 참여했으므로 처형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으나, 인조와 이귀(李貴)의 두둔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같은 해 고변에 연루되어 진도에 유배되었으나, 1631년 이귀와 대신들의 의견에 따라 석방되어 원하는 곳에 거주하였다. 천얼이면서도 궁궐재건과 조선(造船) 등에 공을 세워, 광해군의 특명으로 고원군수에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