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태자첨사 김용비(金龍庇)의 현손이고, 문예부 좌사윤(文睿府左司尹) 김태권(金台權)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로 김방경(金方慶)의 증손녀이고, 김승고(金承古)의 딸이다. 부인은 문화유씨(文化柳氏)로 대언 유총(柳總)의 딸이다.
자세한 관력은 알 수 없으나, 1393년(태조 2) 10월에 경주부사에 임명되어『삼국사기(三國史記)』를 중간하였다. 본래 안렴사 심효생(沈孝生)과 전경주부사 진의귀(陳義貴)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중간(重刊)을 도모하다가 1393년 7월에 관직에서 물러나자, 새로 부임한 관찰사 민개(閔開)의 명령을 받아 1394년 4월에 그 일을 담당하여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삼국사기(三國史記)』 중간의 시말을 적은 발문(跋文)을 썼다. 김해부사와 봉익대부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만년에 안동의 풍산현에 거주하여 그 뒤 자손들이 안동에 세거하게 되었다. 묘는 안동 남선면 가현(加峴) 박일동(朴日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