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춘양(春陽). 아버지는 첨의중찬(僉議中贊) 김이(金怡: 일명 金廷美)이다.
1313년(충선왕 5)에 호군(護軍)으로 있었는데, 같은 해 충숙왕이 즉위하여 아버지와 함께 원나라에 있는 충선왕을 귀국하도록 모의한 김심(金深)·이사온(李思溫) 등과 같은 무리로 의심받아 순군(巡軍)에서 국문당하고 합포(合浦)에 유배되었다. 또한 집의 재산이 몰수되었다.
1330년(충혜왕 즉위년)에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어 전주(銓注: 인사 행정)를 담당하였고, 이듬해 6월 대호군 박련(朴連)이 전주의 불공평에 대하여 상주하자 장형(杖刑)을 당하고 경상남도 거제의 가라산방어소(加羅山防禦所)에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