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

영화
인물
해방 이후 「소」, 「무지개」, 「갈매기」 등에 출연한 배우. 영화배우.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8년
사망 연도
1968년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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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소」, 「무지개」, 「갈매기」 등에 출연한 배우. 영화배우.
개설

본명은 해수(海壽).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35년에 당시 상업주의연극의 산실이었던 동양극장(東洋劇場) 전속 청춘좌(靑春座)에 처음 연구생으로 입단한 이래, 1950년대말까지 약 25년간 연극계에서 활동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광복 후에는 극단 신협(新協)에서 유치진(柳致眞)의 <소>, 이만택(李萬澤)의 <무지개>, 차범석(車凡錫)의 <갈매기> 등에 출연했다.

그의 천성적인, 서민풍의 구수한 연기가 드러난 것은 유치진의 <소>에서 ‘개똥이’역을 맡으면서부터이다. 또한 그의 연기가 더욱 돋보이기 시작한 것은 연극에서보다 1950년대 후반 영화계로 진출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실험정신을 보여주어야 했던 연극무대보다 당시 대중적 인기에 편승한 활달하고 서민적인 영화가 오히려 더 그의 선천적인 적성에 맞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영화연기생활을 하면서 영화인협회 이사장직을 역임했으며, 문교부주최 우수영화주연상(1956), 제1회 영화평론가협회 남우상(1958, 인생차압에서), 제1회 부일영화상(釜日映畫賞) 남우주연상(1959), 제7·8회 아세아영화제 주연남우상(1959·1960), 제5회 청룡영화상 주연상(1967) 등을 수상하였다.

그의 첫 영화출연작품은 1946년 10월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된 <자유만세>로, 이 작품은 광복 후 고려영화사가 처음으로 제작한 본격적인 극영화이며, 우리 나라 영화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했던 작품이다. 이어서 1947년에 <해방된 내 고향>(전창근 각본·감독)에서 중요한 역을 맡음으로써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는 수많은 작품에서 그 천성인 후덕하고도 유순하며 텁텁한 연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연기는 주로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희극배우로서의 가능성(시집가는 날·인생차압 등), 둘째 한국 서민상의 이미지(곰·굴비·박서방 등), 셋째 중후한 신파적인 연기(육체의 길·하루살이인생·잔발잔 등)로 볼 수 있다.

특히 왕후장상에서 지게꾼에 이르기까지의 연기를 통해 풍기는 그의 개성과 정신은 언제나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주변 인생들의 애환과 비애를 느끼게 해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참고문헌

『한국영화전사』(이영일, 삼애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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