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큰아버지이며. 고려 태조의 제5비 신성왕후(神成王后)의 아버지. 관등은 잡간(匝干)이었고,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를 지냈다.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태조는 대단히 기뼈하며 신라의 종실과 혼인하기를 원했다.
이에 경순왕은 그의 큰아버지인 김억렴의 딸을 천거하여 왕건(王建)과 혼인하게 하였고, 이들은 아들 욱(郁)을 낳았다. 뒷날 욱의 아들이 현종(顯宗)이 되어 김억렴의 딸을 신성왕태후(神成王太后)로 추시(追諡)하였고 욱을 안종(安宗)으로 추봉하였다.
그런데 고려 때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에는 “신성왕후 이씨는 본래 경주대위(慶州大尉) 이정언(李正言)이 협주수(俠州守)로 있을 때에 태조가 이 주에 거둥하여 비로 삼았으므로 혹은 협주군(俠州君)이라고도 하였다.”고 하여 신성왕후가 이정언의 딸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협주란 지명은 현종이 즉위한 뒤에 개칭된 것으로 이전에는 대량주군(大良州郡), 또는 대야주군(大耶州郡)으로 불리었다는 점과, 왕비를 군(君)으로 책봉한 예가 고려시대에는 없었다는 것, 또한 『왕대종록』에는 태조의 후비가 25인이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29인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왕대종록』의 기록은 따르기가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