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이찬(伊飡)에 이르렀다. 836년에 흥덕왕이 죽자, 그의 맏아들 균정(均貞)과 둘째아들 헌정(憲貞)의 아들인 제륭(悌隆)이 왕위쟁탈전을 벌인 끝에 균정이 패배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그 뒤 균정의 아들인 우징(祐徵)이 청해진(淸海鎭)의 장보고(張保皐)와 연합하여 민애왕을 타도하고 신무왕으로 즉위한 뒤 그를 혜강대왕(惠康大王)으로 추봉하였다. 신무왕 이후 그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속 계승하였다.
그의 아들은 균정·헌정이고, 딸은 헌덕왕의 비인 귀승부인(貴勝夫人)과 우징을 즉위시키는 데 공이 컸던 김예징(金禮徵)의 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