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관위나 관직 등은 잘 알 수 없다. 927년(경순왕 1)견훤(甄萱)이 고려 태조에게 보낸 서신 중에 그가 국상으로서 고려에 원병을 요청하러 갔다고 한다.
아마 경애왕·경순왕 무렵에 국상의 지위에 있었던 진골 신분으로 대아찬(大阿飡) 이상의 관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국상이란 재상(宰相)과 같은 의미의 것으로 생각되는데, 대체로 상대등이나 병부령(兵部令) 등의 관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견훤이 경애왕을 살해한 뒤 왕의 동생 효렴(孝廉)과 재상 김영경(金英景)을 포로로 잡아갔다는 것으로 보아, 경애왕의 근친으로서 혹 영경의 뒤를 이어 재상의 지위에 올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