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이원(而遠), 호는 취죽당(翠竹堂). 자인(慈仁) 출신. 아버지는 김우련(金遇鍊)이다.
1607년(선조 40) 15세 때 밀양 영남루에서 치른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였다. 이후 1614년(광해군 6)과 1617년(광해군 9)에 각각 향시 생원시 초시에 합격하였다. 이어 1618년(광해군 10)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일찍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강(寒岡) 정구(鄭逑),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고 또한 박식하였으며, 벼슬에 뜻이 없어 향리에서 연하천석(烟霞泉石) 사이를 소요하면서 독서에 힘썼다.
1633년(인조 11)에 자인 복현(復縣)을 위하여, 방희국(方熙國)을 우두머리로 하여 최두립(崔㞳立)·이시혐(李時馦)·이창후(李昌厚) 등 300여 명과 함께 자인이 경주부에 속하여 현민이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는 소를 올려 4년 후 실현을 보았다. 1700년(숙종 26) 자인의 남천서원(南川書院) 상덕사(尙德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