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장연 출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에서 중학과정과 대학과정을 졸업하였다.
1919년 5월경 중국 상해에 망명하여 여운형(呂運亨)·선우혁(鮮于赫) 등이 경영하는 상해 한인인성학교(韓人仁成學校)의 교사로 근무하다가 여운홍(呂運弘)의 교장 사임으로 교장직을 맡아 상해 거류민 아동의 교육을 위하여 진력하였으며, 교회 집사로 교회내 면려회(勉勵會)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또한, 항일독립운동을 계획하던 중 김성근(金聲根)·이춘숙(李春塾)·이영렬(李英烈) 등 24명과 함께 독립운동단체인 구국모험단(救國冒險團)을 조직, 참모로 활약하면서 폭탄제조에 힘쓰는 등 무력에 의한 애국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8월부터는 황해도 선출 임시의정원의원을 지냈으며, 1921년 8월에 결성된 태평양회의외교후원회의 간사로 활약하였다. 1921년 10월 25일 과로로 사망하였다.
1995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