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경 ()

근세조선정감
근세조선정감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 개화파가 계획한 갑신정변을 도왔으며, 『근세조선정감』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이순(而純)
이명
박제형(朴齊炯)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반남(潘南)
관련 사건
갑신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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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 개화파가 계획한 갑신정변을 도왔으며, 『근세조선정감』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이순(而純).

생애 및 활동사항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후에 박영효(朴泳孝)가 수신사로 일본을 왕래할 때에 수행원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여 일본의 새로운 제도와 문명을 살피고 요코스카[橫須賀] 군항을 시찰하는 등 견문을 넓혔다.

귀국 후에는 박영효·김옥균(金玉均) 등의 지도하에 개화독립당의 요인으로 개화운동에 헌신하였다. 박제경은 이미 중국에도 여행간 일이 있었으나 1884년(고종 21) 8월에는 일본이나 중국뿐만 아니라 서양의 여러 나라에도 가보려고 여권을 신청하였기 때문에 조정에서 여권이 발급된 바도 있다.

같은 해 갑신정변에는 박영효·김옥균·서광범(徐光範) 등 개화당 간부들의 계획을 위한 밀회석상에 여러 차례 참석하였으며 12월 4일 정변 거사당일에는 김옥균에게 연락임무를 수행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정변이 3일천하로 실패하게 되자 박제경은 수표교에서 백성들의 손에 희생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박제경은 정변이 일어나기 전에 야사인 『근세조선정감(近世朝鮮政鑑)』을 저술하였는바, 그 상권만이 1886년 7월 일본 동경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어, 한국근대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박제경의 이름은 『근세조선정감』 원본에는 박제형(朴齊炯)으로 기술되어 있으나 이것은 일본에서 이 책을 간행할 당시에 발행자의 착오나 고의로 이름을 고친 것 같고, 정변 전후 관련인사들의 제기록인 『사화기략(使和記略)』·「갑신일록(甲申日錄)」·「근세조선정감 서문」 등과 문헌인 『일본외교문서』 등을 살펴보면 박제형이 아니라 박제경(朴齊絅)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근세조선정감(近世朝鮮政鑑)』(이수정)
『사화기략(使和記略)』(박영효)
『갑신일록(甲申日錄)』(김옥균)
『한국개화사연구』(이광린, 일조각, 1979)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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