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인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시사 단체로, 경치 좋은 곳에 모여 대규모의 시회를 열고 함께 시를 짓고 노래하던 모임이었다.
시회의 결성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임진왜란 때 유희경(劉希慶)이 주축이 된 ‘풍월향도(風月香徒)’와 맥락을 같이하는 위항인(委巷人)들의 시사로서 임준원의 사망시까지 활동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동인으로는 임준원을 비롯하여 최승태(崔承太)·유찬홍(庾纘弘)·김부현(金富賢)·최대립(崔大立)·김충렬(金忠烈)·홍세태(洪世泰) 등이 있다.
이들은 중인들로서 역관·서리 등의 세업에 종사하는 미천한 신분에서 오는 불만과 한탄을 시로 표현하였다. 집단의식을 가지고 동병상련하는 가운데 더욱 공고한 동류의식을 결집하였다.
임준원은 내수사(內需司)에 근무하며 부를 축적하여 이 시회를 주관하였고, 홍세태는 뛰어난 시재로써 모임의 중추적 구실을 하였다. 이 모임에 대해서는 『완암집(浣巖集)』의 「임준원전」에 소개되어 있으며, 홍세태의 「삼청동가」에서 장소가 삼청동 주위의 숲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낙사라는 명칭은 구자균(具滋均)의 『조선평민문학사』에서 편의상 사용한 것으로 이 모임의 참가자들은 명칭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으니 아직 구체적인 명칭이 생겨나지 않은 위항인의 시회라고 볼 수 있다.
이 시회는 후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위항인시사들의 효시로서 그 존재가치가 크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