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흠(崔景欽)·유재건(劉在建)·조희룡(趙熙龍)·이경민(李慶民)·박응모(朴膺模) 등이 함께 활동하였다.
당시는 이미 위항인들이 본격적으로 시사활동을 전개한 지 약 2세기가 경과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위항인들의 전기를 정리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조희룡은 1844년(헌종 10)『호산외기(壺山外記)』를 저술하였고, 유재건은 1862년『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이경민은 1866년(고종 3)『희조일사(熙朝軼事)』를 편집하여 전대의 위항인으로서 뛰어난 재주를 지녔던 인물들의 행적을 정리하였다.
또, 유재건과 최경흠은 1857년(丁巳年, 철종 8)에 『풍요삼선(風謠三選)』을 간행하여 송석원시사에서 세웠던 위항시선집을 정사년마다 간행하는 전통을 충실히 지켰다. 이와 함께 그때 이미 희귀본이 되어버린 『소대풍요(昭代風謠)』를 120년 만에 중간하여 세상에 전하였다.
이 시사활동의 중요한 의미는 앞의 시기와 달리 그들 위항인들이 자신의 문학활동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의 문학과 전대 위항인들의 전기까지 아울러 정리하고자 한 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