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중인계층들이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옥류동(玉流洞)의 송석원에서 결성한 문학단체로 일명 ‘옥계시사(玉溪詩社)’라고도 한다.
사대부문학이 중심을 이루던 조선 사회에 중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위항문학(委巷文學, 또는 閭巷文學)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숙종조 무렵이다. 그 뒤에 계속적인 발전과정을 거쳐서 위항인들의 문학활동 및 그들 활동의 집결체 구실을 한 것이 바로 송석원시사이다.
송석원시사 주요인물은 맹주인 천수경을 비롯하여 장혼(張混) · 김낙서(金洛書) · 왕태(王太) · 조수삼(趙秀三) · 차좌일(車佐一) · 박윤묵(朴允默) 등이 있다.
그들은 매일같이 천수경의 거처인 송석원에 모여 시문으로 즐겼다. 사대부계층에 비하여 열등한 위치에 있는 자신들의 신분적 ·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자포자기적 심사를 읊은 시를 많이 남기고 있다.
송석원시사의 활동 중에서 백전(白戰)은 전국적 규모의 시회이다. 1년에 두 차례씩 개최되었다. 남북 두 패로 나누어 서로 다른 운자(韻字)를 사용함으로써 공정을 기하였던 큰 모임이었다.
송석원시사는 사대부에 비하여 신분이나 경제력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던 위항인들이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자기 권익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채택한 문학적 모임의 시사이다. 이 점은 그들의 시사결성 취지에서도 확인된다.
송석원시사의 취지문인 「서옥계사수계첩후(書玉溪社修禊帖後)」에서 장혼은 같은 중인계층이면서 비슷한 나이에 서로 가까이 거처하는 친한 사람들끼리 시사를 결성하고 문학적 교유를 표방함을 밝혔다. 이 시사는 당대 위항문인들의 집결체이었다.
그리고 1797년에 『풍요속선』을 간행하여 『소대풍요』에 이어 위항인들이 정사년마다 그들의 시선집을 간행하는 전통을 수립하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
위항문학은 이 송석원시사의 융성함과 그 구성원의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인하여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1818년(순조 18)까지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