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삼은 신분의 제한으로 1844년(헌종 10) 83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했다.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핵심적인 인물로 활동했으며 정이조(丁彛祚) · 이단전(李亶佃) · 강진(姜溍) · 조희룡(趙熙龍) · 김낙서(金洛瑞) · 장혼(張混) · 박윤묵(朴允默) 등 여항시인과 사귀었다.
그리고 김정희(金正喜) · 김명희(金命喜) · 조인영(趙寅永) · 조만영(趙萬永) · 한치원(韓致元) · 남상교(南尙敎) · 이만용(李晩用) 등 당시의 쟁쟁한 사대부 문인과도 친하게 지냈다. 특히, 조인영 · 조만영은 풍양 조씨 세도정치의 중추인물이다. 이들은 조수삼의 후원자 역할을 했다.
관직에 나간 이력이 없는 조수삼의 삶은 여행으로 특징지어 진다. 1789년(정조 13) 이성원(李性源, 1725-1790)을 따라 처음으로 중국에 간 이래로 여섯 차례나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이때에 당대 중국의 일류문사인 오숭량(吳崇梁) · 유희해(劉喜海) · 강련(江漣) · 주문한(朱文翰) 등과 사귀었다. 그리고 전국에 발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국내 각지를 빠짐없이 여행하며 많은 시를 남겼다.
조수삼의 시는 대개 전기 · 후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기에서는 생활주변이나 자연을 소재로 하여 대상과의 조화를 추구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후기로 올수록 사회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이 많아진다. 또 장편시도 눈에 뜨이게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김정희는 두보(杜甫)의 시풍과 근접한다고 평하고 있다.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서구도올(西寇檮杌)」, 관북지방을 여행하면서 당시의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묘파한 「북행백절(北行百絶)」 은 조수삼 시가 지니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석고가(石鼓歌)」 · 「억석행(憶昔行)」 · 「병치행(病齒行)」 등도 장편거작으로 인구에 회자되던 작품이다.
그리고 당시의 도시하층민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산문으로 쓰고 칠언절구의 시를 덧붙인 형식으로 되어 있는 「추재기이(秋齋紀異)」, 중국 주변의 여러 나라에 대한 짧은 산문과 시의 결합으로 구성된 「외이죽지사(外夷竹枝詞)」 등은 한문학사상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저서로는 『추재집』 8권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