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풍요(昭代風謠)』는 조선 후기 시인·역관 고시언과 채팽윤이 위항 시인의 시편을 정리하여 1737년에 간행한 시선집이다. 1737년(영조 13)에 목판본으로 첫 간행된 후, 1858년(철종 9)에 『풍요삼선(風謠三選)』을 간행한 최경흠에 의해 금속 활자로 중간(重刊)되었다. 164인의 시편 689수가 시체에 따라 선집되어 있다.
『소대풍요』는 목판본, 금속 활자본, 필사본 등의 많은 이본이 전하는 책이다. 1737년(영조 13)에 목판본으로 첫 간행된 후, 1858년(철종 9)에 『풍요삼선(風謠三選)』을 간행한 최경흠(崔景欽)에 의해 금속 활자로 중간(重刊)되었다. 1737년에 목판으로 간행된 초간본은 9권 3책으로, 천(天) · 지(地) · 인(人)의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858년에 금속 활자로 간행된 중간본은 9권 2책으로, 건(乾) · 곤(坤)의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대풍요』는 164인의 시편 689수가 시체에 따라 선집되어 있다. 수록된 시인은 중인 · 서인을 비롯하여 상인 · 천례까지도 망라되어 있다. 그 중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의관(醫官) · 역관(譯官)과 서리(胥吏)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의관(醫官) · 역관(譯官)은 “하대부 가운데 일등인 사람이다[下大夫一等之人].”라고 지칭되어 그 역할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소대풍요』는 『해동유주(海東遺珠)』를 토대로 증선(增選) 속보(續補)한 것이다. 『해동유주』의 편자인 홍세태(洪世泰)의 작품은 시체별로 여러 편이 수록되어 있다. 별집(別集)에는 이 책의 편찬에 참여한 고시언의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홍유손(洪裕孫) · 박계강(朴繼姜) 등의 조선 초 · 중기 명가들의 작품에서부터 유희경(劉希慶)의 「월계(月溪)」, 백대붕(白大鵬)의 「구일(九日)」, 최기남(崔奇男)의 「염체(奩體)」, 최대립(崔大立)의 「상실후야음(喪失後夜吟)」 등의 명편(名篇)이 수록되어 있다.
『소대풍요』를 모델로 위항시인의 이름을 사후까지 전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이 책에 이르러 조선 초기부터 숙종 때까지의 위항 시인의 시편을 정리하는 작업이 일단 마무리된 셈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갑(週甲) 때마다 속집을 간행하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하여 그 1주갑이 되는 1797년(정조 21)에는 『풍요속선(風謠續選)』 7권 3책이 간행되었다. 그 2주갑이 되는 1857년에는 『풍요삼선』이 나왔다.
『소대풍요』의 성격은 고시언의 제사(題辭)에 잘 나타나 있다. 고시언은 이 책이 사대부의 『동문선(東文選)』과 표리 관계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인위적인 신분에는 귀천이 있지만, 하늘이 준 노래는 같은 소리라 하여 위항인들의 시적 자부심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위항 시인들은 시문 양식에 있어서 그들 나름의 새로운 양식을 마련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전통적인 사대부층의 시문을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대풍요』에 수록된 시편의 대부분이 금체시로 채워져 있는 것도 시대의 시풍을 그대로 따른 결과이다. 배율(排律)과 같은 장편은 찾아볼 수 없고,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의 고체시(古體詩)에 있어서는 『육가잡영(六家雜詠)』의 6인 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소대풍요』는 작가 의식에 있어서도 현실 문제에 대한 인식이 대개 회고적인 감상으로 흐르고 있어 스스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