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삼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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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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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문인 유재건과 최경흠이 『풍요속선』 이후의 위항시인 305명의 시 886수를 수록하여 1857년에 간행한 시집. 위항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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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문인 유재건과 최경흠이 『풍요속선』 이후의 위항시인 305명의 시 886수를 수록하여 1857년에 간행한 시집. 위항시집.
내용

7권 3책. 운각인서체자(芸閣印書體字). 『풍요속선(風謠續選)』이 간행된 지 60년 되는 해인 1857년(철종 8) 『풍요속선』 이후의 위항시인 305명의 시를 수록한 것이다.

유재건의 『이향견문록(異鄕見聞錄)』 「최경흠전」에서 이 책이 간행된 경위를 밝히고 있다. 그에 의하면 1853년에 편찬작업을 시작하여 1857년 겨울에 편집을 완료하여 300여 본을 간행하였다. 그 당시 『소대풍요(昭代風謠)』가 세상에 전하지 않고 있어 함께 100여 본을 중간하였다고 한다.

『풍요삼선』에는 정원용(鄭元容)·조두순(趙斗淳)·윤정현(尹定鉉)의 서문과 장지완(張之琬)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의 체재는 『풍요속선』의 예를 따랐다.

권1에 51명의 시 111수, 권2에는 18명의 시 117수, 권3에는 11명의 시 107수, 권4에는 29명의 시 94수, 권5에는 34명의 시 100수, 권6에는 89명의 시 162수, 권7에는 73명의 시 195수 등의 총 886수가 수록되어 있다.

『풍요속선』에서는 각 시인당 수록된 시가 한 편이거나 서너 편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풍요삼선』의 경우 한편만 수록된 사람도 있지만 작품수가 많은 사람은 수십 편씩 실려 있다. 조수삼(趙秀三)의 경우에는 78수를, 장혼(張混)의 경우에는 45수를 싣고 있다.

『풍요삼선』에 실린 시인 중에 유명한 인물은 임광택(林光澤)·차좌일(車佐一)·김낙서(金洛瑞)·천수경(千壽慶)·장혼·조수삼·왕태(王太)·박윤묵(朴允默)·정지윤(鄭芝閏) 등으로 당시 시단에서 시명을 얻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위항문학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에서 활동하였던 인물들로, 위항문학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다. 『풍요속선』의 예에 따라 이름을 알 수 없는 4명과 승려 13명, 여자 4명의 시도 포함시켰다. 수록된 시들은 대체로 근체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풍요삼선』의 시의 내용은 전대의 위항시와 거의 유사하나 위항문학에 참여하는 자부심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 그 예로서 「송석원(松石園)」이라는 제목의 시가 많이 나온다. 가난하고 뜻을 펼 수 없는 처지이지만 함께 모여 시를 읊을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풍요삼선』에 실린 시들은 위항문학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것이라 그 의의가 크다. 위항인의 시만을 묶어 펴내는 전통은 이 『풍요삼선』에서 그치게 된다. 이로부터 60년 후에는 『대동시선(大東詩選)』으로 대체되어 모든 계층의 한시를 총망라하여 수록하게 된다.

『풍요삼선』은 규장각도서·국립중앙도서관도서에 있다. 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민족문화사(民族文化社)·여강출판사(驪江文化社)에 의하여 영인되었다.

참고문헌

『조선평민문학사』(구자균, 문조사, 1947)
「역대한시선집(歷代漢詩選集)의 문학사적의의」(민병수, 『관악어문연구』 7,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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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민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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