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의 일섭원(日涉園)·칠송정(七松亭) 등에서 시회를 가졌던 위항인 시사로서 일명 ‘칠송정시사’라고도 한다.
원래 서원시사·서사(西社)는 송석원시사의 별칭이었으나 그 뒤 김희령의 일섭원이 서원이라 불리게 되자 이것을 명칭으로 채택하게 된 것으로서 송석원시사의 맥을 잇는다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참가 동인으로는 지석관·김희령과 박기열(朴基說)·박기연(朴基淵)·김영면(金泳冕)·유정주(劉定柱)·유기성(柳基成)·조경식(曺景軾) 등이 있고, 송석원시사의 막내였던 박윤묵(朴允默)은 이들을 격려, 고무하는 위치에 있었다.
박윤묵의 시에 서원시사의 모임에 대하여 쓴 것이 여러 편 있다. 그 가운데 1843년(헌종 9)에 일섭원에서 시연(詩筵)을 베풀고 그 정경을 묘사한 것이 있어 이들의 시사가 대체로 헌종조에 활발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은 함께 읊은 시들을 사대부시인인 신위(申緯)·윤제홍(尹濟弘) 등에게 비평을 받기도 하며, 사대부들과의 교유도 확대하였다. 송석원시사의 맥을 이은 정통시사임을 자처하면서 활동을 전개한 이 시사는 전대의 풍류를 이으며, 그들의 결속을 다지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