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에서 사용하는 쌀·국수·술·간장·기름·꿀·채소·과일 및 궐내 연향(宴享)·직조(織造) 등을 관장하는 한편, 왕자를 낳은 왕비의 권초(捲草)를 봉안하였다.
1392년(태조 1) 관제를 새로이 정할 때 내부시(內府寺)라 하였으나, 1401년(태종 1) 내자시로 개칭하고, 1403년에는 의성고(義成庫)를 병합하여 소관사무를 확정하였으며, 1405년 육조의 직무를 나눌 때 호조에 소속시켰다.
그 뒤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재정지출을 절약하기 위하여 1637년(인조 15) 소관사무가 비슷한 내섬시(內贍寺)에 병합되었다가 곧 다시 부활되었다. 조선 후기 재정난 타결책으로 사온서(司醞署)를 병합하여 존속하다가 1882년(고종 19)에 혁파되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소속 관원으로 정(正, 정3품), 부정(副正, 종3품), 첨정(僉正, 종4품), 판관(判官, 종7품), 주부(主簿, 종6품), 직장(直長, 종7품), 봉사(奉事, 종8품) 각 1인을 두었다.
또 왕실에서 필요한 물품을 직접 제작하기 위하여 옹장(翁匠) 8인, 화장(花匠) 2인, 방직장(紡織匠) 30인, 성장(筬匠) 2인의 공장(工匠)이 소속되었는데, 이들은 도자기 생산과 직조에 관련된 장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