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습지(習之), 호는 만은(晩隱). 아버지는 현감 이항(李恒)이다.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가난하면서도 학문을 좋아하여 이름이 사방에 알려졌다. 문음(門蔭)으로 출사하여 계방(桂坊: 세자익위사)에 들어갔으며, 대신(大臣)이 경행(經行)으로 천거하여 연산현감이 되었다. 1779년(정조 3) 이재의 문집 끝에 있던 홍계희(洪啓禧)의 이름을 삭제하였다 하여, 정언 유맹양(柳孟養)의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 관리들의 명단)에서 제명되었다.
노직(老職)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풍안군에 봉하여졌다. 벼슬은 부총관에 이르렀고, 1791년 정조는 광주(廣州) 지방관에게 명하여 계방 구료(舊僚)였던 이관의 안부를 묻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