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사일(士一). 아버지는 금장(禁將) 이광익(李光益)이다.
1841년(헌종 7) 경상좌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된 이래, 경상우도병마절도사·경기수군절도사·함경북도병마수군절도사 등을 거쳐 1853년(철종 4)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그 동안 1842년과 1854년에는 암행어사였던 김응균(金應均)·박규수(朴珪壽) 등의 고소로 죄를 받았지만, 1856년 좌변포도대장, 1858년 총융사 등을 거쳐 1863년에는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효의(孝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