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창 ()

목차
관련 정보
고대사
인물
후삼국 시기 서남해안 나주 압해도를 중심으로 해상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내용 요약

후삼국 시기 서남해안 나주 압해도를 중심으로 해상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능창의 해상 세력에 대해서 후백제 견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도 하고 독립적인 해상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능창은 후고려 궁예의 부하 장수였던 왕건에게 제거되었다.

정의
후삼국 시기 서남해안 나주 압해도를 중심으로 해상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
인적 사항

능창(能昌)은 후삼국 시기 서남해안 나주 지역의 압해도와 주변 섬들의 해상 세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능창은 바다 싸움에 능하여 주1이라고 불렸다. 능창의 해상 세력에 대해서 후백제 견훤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도 하고 독립적인 해상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능창이 후백제와 연결되었어도 반독립적인 성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능창은 후고려 궁예의 부하 장수였던 왕건(王建)에게 제거되었다.

주요 활동

능창은 왕건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망명한 자들을 끌어모으고 갈초도(葛草島)에 있는 반란군과도 연관을 맺어 준비하고 있었다. 왕건은 이를 알고 싸우기 전에 미리 아무도 모르게 물에 익숙한 자 십여 명을 갈초도 나루터로 보내 능창을 사로잡았다.

왕건은 능창을 궁예에게 보냈다. 궁예는 능창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하길, “해적들이 다 너를 추대하여 두령으로 하였지만, 지금은 나의 포로가 되었으니 어찌 나의 계책이 신기하지 않느냐?” 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고 그를 죽였다.

평가

왕건이 능창을 제거한 때는 『고려사』에 909년부터 912년 사이로 나온다. 정확한 연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909년으로 보거나, 능창 기록에 바로 이어서 913년 기록이 나오고 덕진포 전투 이후에 벌어진 사건으로 추정하여 912년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능창이 제거된 이후 서남해안은 후고려 궁예의 세력권에 들어갔고, 왕건의 위치도 확고해져 갔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

단행본

이도학, 『후백제 진훤대왕』(주류성, 2015)
신호철, 『후백제 견훤정권 연구』(일조각, 1993)

논문

김명진, 「태조 왕건의 나주공략과 압해도 능창 제압」(『도서문화』 32, 2008)
강봉룡, 「압해도의 번영과 쇠퇴」(『도서문화』 18, 2000)
정청주, 「신라말 고려초의 나주호족」(『전북사학』 14, 1991)
문수진, 「고려건국기의 나주세력」(『성대사림』 4, 1987)
주석
주1

족제빗과의 포유류. 몸의 길이는 60~80cm, 꼬리의 길이는 40~50cm이고 머리와 몸은 편평하다. 몸의 위쪽은 광택 있는 갈색이고 아래쪽은 엷은 갈색이다. 짧은 네발에 물갈퀴가 있어 헤엄을 잘 친다. 가죽은 옷을, 털은 붓을 만드는 데에 쓴다. 유럽, 북아프리카, 인도, 아시아 중북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이다.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