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 )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우측면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우측면
건축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쌍탑 중 동쪽의 불탑. 보물.
정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터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쌍탑 중 동쪽의 불탑. 보물.
개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남쪽 기슭인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에 남아 있는 쌍탑 가운데 동탑으로,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다. 상륜의 일부가 결실된 것을 제외하면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옥개석의 체감과 비례가 알맞아 단아한 양식의 석탑으로 평가된다.

역사적 변천

탑이 위치한 단속사는 경덕왕 7년(748)에 대나마 이순(李純)이 창건했다는 설과 경덕왕 22년(763) 신충(信忠)이 창건했다는 2가지 설이 전한다. 신행(神行)의 제자인 삼륜이 헌덕왕 5년(813) 헌덕왕비의 적극적 후원을 받아 크게 성장하였는데, 석탑은 이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선 초 유생들에 의해 가람의 일부가 훼손되고 불상과 경판이 파괴되기도 하였으나, 명맥을 유지하다가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으로 전한다. 지금도 최치원이 쓴 것으로 전하는 ‘광제암문(廣濟嵒門)’의 명문이 남아 있다. 김헌정(金獻貞)이 지은 신행선사비(神行禪師碑), 고려 평장사 이지무(李之茂)가 지은 대감국사비(大鑑國師碑), 한림학사 김은주(金殷舟)가 지은 진정대사비(眞定大師碑)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1999년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사지 일부를 발굴하여 일부 건물지 확인과 여러 유물을 수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내용

동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이다. 기단은 상하층 이중으로 구성되었는데, 기단의 외곽을 장대석과 자연석을 두르고 내부를 토단으로 다져 넣었다. 하층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1매로 하고, 4개의 면석으로 결구되었다. 하층 갑석은 총 6매로 상단 중앙에 낮게 2단의 호각형 받침을 새겨 상층기단 면석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은 4매의 판석을 이용하여 엇물림 결구하고 중앙에 1주의 탱주를 모각하였다. 상대갑석은 동서로 이음이 있는 2매로 구성하였는데 하단에는 1단의 갑석 부연을 두었고 상단에는 2단의 각형 괴임을 두어 초층 탑신을 받치고 있다. 상하층 갑석은 거의 기울기를 두지 않아 다소 직선적인 느낌을 준다.

탑신부는 삼층 모두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로 되어 있는데, 탑신석은 모두 네 모서리에 우주를 두었고 면석 표면에는 문비 등의 장식을 새기지 않았다. 옥개석은 3층 모두 5단의 옥개받침을 두었으며 상단에는 1단의 괴임을 두어 위층 탑신을 받치고 있다. 옥개석의 처마는 모서리에서 경쾌한 반전을 두었으며 모서리 전각부 양쪽에 각각 1개씩의 풍경공이 남아 있다.

상륜은 노반, 복발, 앙화가 남아 있는데, 노반은 정방형 직육면체로 상단에 2단의 띠돌림이 있다. 복발은 편구형으로 사방에 꽃장식을 두고 띠매듭을 둘렀고 앙화는 3단의 받침 위에 8엽형의 꽃을 양각해 놓아 화려함을 보여준다.

특징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양식을 따르면서 세부적으로는 변용이 엿보인다. 먼저 탑 외곽을 두른 토단은 7∼8세기 석탑에서 나타나는 탑구와는 달리 지대석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이 토단은 탑구라기보다는 탑의 공간과 외부공간을 구획하려는 의도로 9세기 신라 석탑에 유행하였다. 하층 기단은 8세기 석탑 양식을 보이고 상층기단은 9세기 석탑 양식을 보여 8세기와 9세기 석탑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과도기적 석탑으로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상하층 기단 갑석의 기울기가 급하게 나타나는 9세기 석탑에 비해 거의 기울기를 표현하지 않았다. 한편 동탑은 서탑과 크기나 양식에 있어 유사하나 각 층 옥개석 상단의 괴임이 1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옥개석 상단 받침 1단은 옥개받침 5단의 신라 석탑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고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목된다.

의의와 평가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은 기본적으로는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8세기에서 9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식들을 잘 보여주는 석탑이다. 또한 선종가람의 성립과 유행에서 확산된 9세기 신라 석탑의 선두적 양식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는 탑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산청』(국립진주박물관, 2011)
『한국사지총람』하(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0)
『산청 단속사지』(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2002)
『신라석탑연구』(장충식, 일지사, 1994)
「통일신라 이중기단 석탑의 형식」(신용철,『동악미술사학』9, 동악미술사학회, 2008)
집필자
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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