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남쪽 기슭인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에 남아 있는 쌍탑 가운데 서탑으로,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전형적인 신라 석탑이다. 같은 사지에 남아 있는 동탑에 비하면 기단부의 훼손 상태가 심하며 상륜부의 부재도 많이 결실되었다.
단속사 창건 이후 탑의 정확한 건립 연대나 유래 등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두 탑의 규모나 제작수법에서 같은 시기에 건립되었다고 추정된다. 건립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신행선사(神行禪師碑)의 제자인 삼륜대사가 신라 왕실의 협력으로 절을 중창했을 때인 813년을 전후한 시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서탑은 1976년 완전 해체·수리되었는데, 이때 초층 탑신 상면에서 원형사리공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사리장엄구는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서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이다. 기단은 상하층 이중으로 구성되었는데, 기단의 외곽을 장대석으로 두르고 내부를 토단으로 다져 넣었다. 하층 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1매로 하고 4개의 면석을 이용하여 판석식으로 결구되었다. 하층 갑석은 총 8매로 구성되었는데 부분부분 파손과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갑석 중앙에는 2단의 호각형 받침을 두어 상층 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은 남면은 2매, 나머지 면은 1매씩 총 5매의 판석을 이용하여 엇물림 결구하고 중앙에 1주의 탱주를 모각하였다. 상대갑석은 동서로 이음이 있는 2매로 구성되었는데 하단에는 1단의 갑석 부연을 두었고 상단에는 2단의 각형 괴임을 두어 초층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삼층 모두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매로 탑신석은 모두 네 모서리에 우주를 두었고 면석 표면에는 문비 등의 장식을 새기지 않았다. 옥개석은 3층 모두 5단의 옥개받침을 두었으며 상단에는 2단의 괴임을 두어 위층 탑신을 받치고 있다. 옥개석의 처마는 모서리에서 경쾌한 반전을 두었으며 모서리 전각부 양쪽에 각각 1개씩의 풍경공이 남아 있다.
상륜은 노반, 복발과 보개가 남아 있는데, 노반은 정방형 직육면체로 상단에 2단의 띠돌림이 있다. 복발은 편구형으로 사방에 꽃장식을 두고 매듭을 둘렀는데 훼손이 심한 편이다. 그 위로는 보개가 남아 있는데 마모와 훼손이 심하다.
서탑은 동탑과 쌍을 이루는 탑으로 기단부 외곽의 토단의 구성이나 상하층 기단 탱주의 숫자가 1:2로 구성되는 등 전체적인 외관에 있어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하층 기단 갑석과 상층 기단 면석의 숫자가 다르고 무엇보다도 옥개석 상면괴임이 동탑은 1단이데 비해 서탑은 2단인 점이 특징이다. 이는 같은 형식의 쌍탑이면서 외형에 있어 다른 표현이어서 탑을 건립한 장인의 차이인지 혹은 제작시기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단속사지 쌍탑은 상하층 탱주의 숫자가 1:2로 축소되었으나 기단부터 탑신의 체감율이 안정적이며 조각 수법에 있어서도 우수하여 8세기 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동일 사찰내의 쌍탑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여 당시 석탑 건립에 있어 분화된 직능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또한 9세기 소형화되는 신라 석탑의 양식변화를 살펴보는 데에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석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