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책. 필사본.
내용은 1680년(숙종 6)부터 1728년까지의 궁중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연대순으로 추려 기록한 것이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허적(許積)의 첩의 아들 견(堅)이 갖은 만행을 자행하며 종실 복선군(福善君)·복창군(福昌君) 등과 반역을 꾀하다가 서인측 김석주(金錫胄)의 고변으로 주살되고 남인이 실각했던 이른바 삼복사건(三福事件)이 기록되었다.
둘째, 현종비인 명성왕후(明聖王后)가 궁인 장씨(張氏)를 사가(私家)로 축출했는데 왕명으로 다시 불러들여 숙원(淑媛)에 봉하고 지나친 총애로 인하여 주위에 많은 시비가 일어났다.
이어 왕비로 책봉할 때 오두종(吳斗宗)·박태보(朴泰輔) 등의 적극적인 반대 상소가 있었다. 그 뒤 폐비 민씨(閔氏)를 복위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강등, 장희재(張希載)와 민암(閔黯) 등을 처벌했던 일을 기록하였다.
셋째, 송시열(宋時烈)과 윤증(尹拯)을 각각 영수로 노론과 소론의 분쟁이 격화되자 숙종은 윤증을 유현(儒賢)으로 대접하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남구만(南九萬)·여성제(呂聖齊)·이사명(李師命) 등을 변방에 원찬(遠竄)하고 박세채(朴世采)를 불러들이는 등 대신들의 대폭적인 인사 이동이 있었다.
그 뒤 다시 송시열을 출송하고 윤선거(尹宣擧)와 윤증을 복작했으며, 장씨를 다시 대빈으로 추존함으로써 남인측과 소론측에서 다시 집권하게 되었던 사실을 소상히 기록하였다.
넷째,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 편집한 ≪예기유편 禮記類編≫을 왕명으로 간행하려고 했으나, 그 때 최석정이 내의원제조(內醫院提調)를 겸직하여 시약(侍藥)을 잘못한 죄로 삭직되고 간행하려던 ≪예기유편≫까지 태워버렸던 사건을 기록하였다.
다섯째, 신임사화 때 주동인물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 등을 참형한 일, 기호 지방에서 역적이 일어나 소동을 벌이던 일 등을 기록하였다. 끝에 민창수(閔昌洙)의 발문이 있다.
이 책은 숙종비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의 동생 민진원이 척신이라는 비판을 받아가며 왕실의 틈바구니에 끼어 치열하였던 당쟁과 이로 인한 인현왕후의 복위, 장희빈의 사건 등 많은 풍파의 내막을 노론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다. 당시의 당쟁 연구에 도움이 된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