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옛 강토에서 요나라 조정의 지배를 받고 살던 발해의 지배층 후손으로 1031년(덕종 즉위년) 고려에 투화하였다. 발해의 왕족 후손인 것으로 판단되며, 거란의 발해감문군(渤海監門軍)에서 벼슬까지 하였다.
그러나 1029년(현종 20) 요나라의 동경사리군상온(東京舍利軍詳穩)이자 발해의 지배층 후손이었던 대연림(大延琳)이 요나라에 반기를 들자 발해 후손들은 이를 지지·협력하는 무리들과 요나라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무리들로 나누어졌는데, 대도행랑은 전자의 무리에 속하였다.
그가 특별히 대연림을 위하여 어떠한 활약을 하였는가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대연림의 흥요국 멸망 후 요나라의 공로자로 벼슬을 받았던 사람이 아니었음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는 적어도 내·습·천·윤주(來隰遷潤州) 및 상경임황부(上京臨璜府) 동북으로 발해의 후손들을 옮기려던 요나라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연림반란사건 및 발해 후손들에 대한 요나라의 강제이민정책 등에 대한 반발로 인하여 대도행랑과 무리 14명은 고려에 투화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