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예 ()

목차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때, 하정사로 당나라에 방문했다가, 신라 사신과 발해 사신의 자리 다툼인 쟁장사건에 연루된 발해의 왕족.
인물/전통 인물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관련 사건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爭長事件)’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때, 하정사로 당나라에 방문했다가, 신라 사신과 발해 사신의 자리 다툼인 쟁장사건에 연루된 발해의 왕족.
내용

최치원(崔致遠)이 쓴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에는 왕자(王子)라고 되어 있으나, 어느 왕의 아들인지 확실하지 않다. 897년(경왕 28) 7월 하정사(賀正使)로 당나라에 들어갔다.

그는 발해가 크고 군사가 강하다고 생각하였으나, 당나라에서는 조헌(朝獻)할 때 발해 사신의 자리의 순서를 신라 사신의 아래에 두고 있었다.

이에 서장을 올려 발해가 신라 위에 거하도록 허락하여줄 것을 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는 당시 신라와 발해가 국제사회에서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는 외교전으로서, 일반적으로 신라와 발해의 ‘쟁장사건(爭長事件)’이라 한다.

참고문헌

『동사강목(東史綱目)』
『최문창후전집(崔文昌侯全集)』(성균관대학교대동문화연구원, 1972)
집필자
김기흥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