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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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의 관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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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의 관직명.
내용

전투부대의 실질적인 최고지휘관이다. 『고려사』에서 도령이 나타나는 곳은 전시(戰時)의 군사조직인 오군(五軍 : 中·前·後·左·右), 별초군(別抄軍), 양계(兩界)의 주진군(州鎭軍), 귀화한 여진인의 수령이다. 이들 가운데 성격이나 활동이 가장 주목되는 것은 양계 주진군의 도령이었다.

양계 도령제의 성립시기의 하한은 1104년(숙종 9)으로 파악된다. 인원은 각 주진에 1인이 원칙이나 실제로는 2인 이상도 있었다. 도령이 2인 이상일 경우 현임자와 전임자로 생각된다. 고려시대는 전임도령과 현임도령이 함께 지방군의 지휘·통제에 관련하고 있었음이 특징이다.

그러나 전임도령이 지휘했던 것은 일종의 사병적(私兵的) 존재였다. 이는 양계의 도령이 독자적인 군사력을 가진 존재였기에 그와 같은 특징이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또한 양계의 도령은 관등의 높고 낮음보다는 그가 어느 주진의 도령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보아, 지방 토호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이들 양계 주진의 도령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인 것은 조위총(趙位寵)의 난으로서, 이 때 서북지방의 실질적인 군사 실력자로 나타나고 있다. 그 뒤, 고종 때 거란 유종(遺種)과 몽고에게 침입을 당하여 다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258년(고종 45) 동계에 몽고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세워지고, 1270년(원종 11) 북계에 동녕부(東寧府)가 설치되면서, 양계의 도령은 독자적인 지방세력으로 존립할 여지가 없게 되어 사라졌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문종실록(文宗實錄)』
「고려양계(高麗兩界)의 도령(都領)에 대하여」(김남규, 『경남대학논문집』 4,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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