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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장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9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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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장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9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4권 2책. 목판본. 1869년(고종 6) 후손 우진(禹鎭)·규한(圭漢)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허전(許傳)의 서문이 있다. 장서각 도서에 있다.

권1·2에 시 244수, 서(書) 15편, 권3·4에 소(疏) 2편, 제문 15편, 찬(贊) 1편, 잡저 4편, 유사 6편, 묘표 3편, 부록으로 행장·묘갈명·묘지명·상량문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진시폐소(陳時弊疏)」에서는 저자의 풍부한 학문과 국가관을 엿볼 수 있다. 시대의 폐단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제시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제문은 진주목사·영암군수·울산부사로 있을 때 가뭄이 들어 천신(天神)·산신(山神)·용묘(龍墓) 등의 신에게 비를 내려줄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 많다.

잡저의 책문(策文)은 용인법(用人法)에 대하여 논한 것이다. 사람은 각각 기량(器量)을 지녔으며, 그 기량의 넓고 좁고 깊고 얕음은 마치 하늘과 땅 같은 기량이 있는가 하면 강과 하수 같은 기량도 있다. 이것은 학문의 진취에 따라 식견의 높고 낮음이 비례하고, 식견의 차이에 따라 기량의 대소도 비례한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량을 점치는 데는 대체로 학문의 수준을 보면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사람을 쓰면 적소에 앉힐 수 있다고 하였다.

「온공불이촉한위정통론(溫公不以蜀漢爲正統論)」은 촉한을 정통으로 볼 수 없다는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의 말을 반박한 것으로 해박한 지식과 논리가 주목된다.

「기사일기(己巳日記)」는 1689년(숙종 15) 그가 봉상시정승문원판교(奉常寺正承文院判校)에 제수되었을 때 나아가지 않은 심정과 왕비 민씨를 폐출시킨 데 대한 내용을 주축으로 4, 5월 두 달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간추린 일기이다.

유사(遺事)는 그의 6대조부터 할아버지까지의 가계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수록된 내용들은 기사환국 및 인현왕후 폐비사건 등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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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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