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

몽유도원도 / 안견
몽유도원도 / 안견
회화
작품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安堅)이 그린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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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이 그린 산수화이다. 안견의 독실한 후원자였던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도원을 방문하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한 작품이다. 북송의 화원화가 곽희 화풍의 영향이 엿보이나 여러 가지 양식적 특색은 안견이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음을 보여준다. 안견의 그림뿐만이 아니라 안평대군이 쓴 발문과 시, 당대의 문사 20여 명과 1명의 고승이 쓴 제찬 등 23편의 찬문이 곁들여져 있어 서예사적 가치도 뛰어나다. 조선 초기 문화예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기념비적 작품으로 현재 일본 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정의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安堅)이 그린 산수화.
개설

안견이 1447년(세종 29)에 그린 산수화로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다. 크기는 세로 38.7㎝, 가로 106.5㎝이고, 일본의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447년 4월 20일 안견의 독실한 후원자였던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꿈 속에 도원(桃源)을 방문하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한 것이다.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안평대군이 쓴 발문(跋文)에 의하면, 안견이 이 걸작을 단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하여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짐작하게 한다.

구성 및 형식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는 안견의 그림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제서(題書)와 발문, 그리고 1450년(세종 32) 정월에 쓴 시 한 수를 비롯해 20여 명의 당대 문사(文士)들과 1명의 고승(高僧)이 쓴 제찬을 포함해서 모두 23편의 찬문(讚文)이 곁들여져 있다.

안평대군과 더불어 찬문을 남긴 인물은 신숙주(申叔舟), 이개(李塏), 하연(河演), 송처관(宋處寬), 김담(金淡), 고득종(高得宗), 강석덕(姜碩德), 정인지(鄭麟趾), 박연(朴堧), 김종서(金宗瑞), 이적(李迹),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 윤자운(尹子雲), 이예(李芮), 이현로(李賢老), 서거정(徐居正), 성삼문(成三問), 김수온(金守溫), 만우(卍雨), 최수(崔脩) 등으로 모두 안평대군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다.

안견의 그림과 이들의 시문(詩文)은 현재 두 개의 두루마리로 나누어져 표구되어 있다. 첫 번째 두루마리에 박연의 시문까지, 두 번째 두루마리에 김종서의 찬시부터 최수의 찬시까지 실려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순서는 일본에서 다시 표구할 때 변형된 결과로 여겨진다. 일본에 널리 알려진 신숙주의 찬문이 맨 앞에 배치된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본래는 고득종의 찬문이 제일 앞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들 시문은 각 인물의 친필로 쓴 것이어서 그 내용의 문학적 특징은 물론 서풍(書風)까지 파악할 수 있어 서예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즉 「몽유도원도」의 그림과 거기에 곁들여진 시와 글씨가 함께 어우러져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경지를 구현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 초기 세종대 문화예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내용

이 그림은 회화 양식상 여러 가지 특색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이야기의 전개가 두루마리 그림의 통상적인 예와 달리 왼편 하단부로부터 오른편 상단부로 대각선을 따라 전개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왼편의 자연스러운 현실세계와 오른편에 배치된 환상적인 도원(桃園)의 세계가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것도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이다. 현실세계는 부드러운 토산(土山)으로 이루어져 있고, 도원의 세계는 기이한 형태의 암산(巖山)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그 차이가 현저하다.

무엇보다 큰 특색은 전체 경관이 몇 개로 따로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경군(景群)들로 짜여 있다는 점이다. 즉 여러 개의 산 무더기들이 합쳐져 하나의 통일된 전경(全景)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색은 조선 초기 안견파(安堅派) 산수화와 그 영향을 받은 일본의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산수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두 가지 두드러진 시각의 차이가 엿보인다. 즉 왼편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오른편 대부분의 도원은 위에서 내려다 본 부감법(俯瞰法)을 적용하여 표현되었다. 이처럼 부감법을 사용함으로써 안견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공간이 넓은 도원의 경치를 성공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산들은 왼편에서부터 오른편으로 점점 높아지는 경향을 띠고 있어서 서서히 웅장감이 느껴지도록 하였다. 이 밖에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은 전혀 그려져 있지 않아 중국에서 그려진 도원도(桃源圖)와는 차이를 드러낸다.

이상의 여러 가지 양식적인 특색은 바로 안견이 독자적인 화풍을 형성하였고, 그러한 특징들이 후대의 한국 산수화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말해준다. 또한 붓을 잇대어 쓴 필법(筆法), 조광효과(照光效果)를 살린 표현, 그 밖의 세부에서 안견이 토대로 삼았던 북송대(北宋代) 이래의 이곽파 화풍(李郭派畵風), 특히 곽희 화풍(郭熙畵風)의 영향이 엿보인다.

참고문헌

『안견과 몽유도원도』(안휘준·이병한, 예경, 1991)
「조선초기 안견파 산수화 구도의 계보」(안휘준, 『초우황수영박사고희기념미술사학논총』, 통문관, 1988)
「안견과 그의 화풍: 몽유도원도를 중심으로」(안휘준, 『진단학보』38, 진단학회,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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