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칠서 ()

무경칠서
무경칠서
문헌
용병하는 방법을 총망라한 중국의 일곱 가지 군서. 병서.
이칭
이칭
무학칠서
내용 요약

무경칠서는 용병하는 방법을 총망라한 중국의 일곱 가지 병서이다. 무학칠서(武學七書)·칠서(七書)라고도 한다. 손무의 『손자』, 오기의 『오자』, 사마양저의 『사마법』, 위료의 『위료자』, 이정의 『이위공문대』, 황석공의 『삼략』, 여망의 『육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무경칠서는 무전(武典)으로 채택되어, 무과의 두 고시 과목인 강서(講書)와 무예 중 강서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1452년 수양대군이 최항 등에게 명하여 편찬한 10권 5책의 『무경칠서주해』 등이 있다. 무경칠서는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당시의 군사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정의
용병하는 방법을 총망라한 중국의 일곱 가지 군서. 병서.
개설

무학칠서(武學七書) · 칠서(七書)라고도 한다. 주나라 주1가 쓴 『손자(孫子)』, 전국시대 위나라 주2의 『오자(吳子)』, 제나라 주3의 『사마법(司馬法)』, 주나라 위료(慰繚)의 『위료자(尉繚子)』, 당나라 이정(李靖)의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한나라 황석공(黃石公)의 『삼략(三略)』, 주나라 여망(呂望)의 『육도(六韜)』를 일컫는 말로 송나라 원풍연간(元豊年間, 1078∼1085)에 이들 병서를 무학(武學)으로 지정, 칠서라고 호칭한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 무경칠서는 훌륭한 무전(武典)으로 채택되어, 과거(科擧) 무과의 두 고시과목인 강서(講書)무예(武藝) 중 강서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즉, 강서는 무과의 복시(覆試)에만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사서오경 중 하나와 무경칠서 중 하나, 『통감(通鑑)』 · 『병요(兵要)』 · 주4 · 『소학』 중의 하나를 각각 택하고 『경국대전』과 함께 네 가지 책으로 시험을 치르게 하였다.

내용

각 책의 내용을 보면, 『손자』는 제일 오래된 병서로서 1권으로 되어 있으며, 계(計)에서 용간까지 13편(篇)으로 되어 있다. 전쟁을 하는 데 필요한 갖가지 전략과 슬기가 총망라되어 있다. 또한 전략뿐 아니라 인사(人事) 전반에 걸쳐서도 비범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이 책은 『오자』와 함께 역과초시(譯科初試)의 교재로도 쓰였다고 한다.

『오자』는 1권으로, 도국(圖國)에서 여사(勵士)까지 6편으로 된 병서이다. 이 책은 오기의 문도(門徒)가 편찬한 것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사마법』 역시 1권이고, 인본(仁本)에서 용중(用衆)까지 5편으로 되어 있다. 『위료자』는 『손자』에 필적할만한 병법서로서, 전 5권이며 천관(天官)에서 병령(兵令)까지 24편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한 주5의 주(註)가 있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이위공문대』는 당나라 태종(太宗)과 저자인 이정이 병법에 관하여 문답한 것을 수록한 것으로 상 · 중 · 하의 3권으로 되어 있다. 이는 후에 다른 사람이 이정의 용병론(用兵論)을 수록한 것이라고도 한다. 『삼략』은 보통 ‘육도 · 삼략’이라 부르듯이 『육도』라고도 부른다. 상략(上略) · 중략(中略) · 하략(下略)으로 되어 삼략이라 하며, 모두 3권으로 되어 있다. 『황석공삼략』이라고도 한다.

『육도』는 문무도(文武韜) 등 6도로 나누어져 있고 전 6권으로 되어 있다. 이 『육도』 · 『삼략』은 위작(僞作)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육도』 · 『손자』 · 『오자』 · 『사마법』 · 『삼략』 · 『위료자』 · 『이위공문대』의 순으로 되어 있었으나, 그 뒤 주복(朱服)이 순서를 고쳐 『삼략』을 『이위공문대』의 뒤로 보내고 『육도』를 맨 뒤로 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순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 무경칠서에 관한 참고서적도 여러 종류가 있다. 송나라 증공량(曾公亮)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40권의 주6, 금나라 시자미(施子美)가 엮은 『칠서강의(七書講義)』 12권, 명나라 유인(劉寅)의 『칠서직해(七書直解)』 12권, 황헌신의 『무경개종(武經開宗)』 14권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452년(단종 즉위년)경 수양대군(首陽大君)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편찬한 10권 5책의 『무경칠서주해(武經七書註解)』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이 무경칠서는 군사를 훈련시키고 전략을 세우는 등 용병하는 방법을 총망라한 것으로,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당시의 군사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손자』 등은 광범위한 인간관계를 함께 다루고 있어, 오늘날의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문헌통고(文獻通考)』
『경국대전(經國大典)』
『무경칠서주해(武經七書註解)』
주석
주1

중국 춘추 시대의 병법가(?~?). 기원전 6세기경의 사람으로, 오나라 왕 밑에서 초나라, 진나라를 위압하고 절도와 규율 있는 군사를 양성하였다. 저서에 병서 ≪손자≫가 있다. 우리말샘

주2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의 병법가(B.C.440?~B.C.381). 증자(曾子)에게 배우고 노(魯)나라, 위(魏)나라에서 벼슬한 뒤에 초(楚)나라에 가서 도왕(悼王)의 재상이 되어 법치적 개혁을 추진하였다. 저서에 병법서 ≪오자(吳子)≫가 있다. 우리말샘

주3

중국 춘추 시대 제나라의 명장(?~?). 재상 안영(晏嬰)의 추천으로 등용되어, 연(燕)나라ㆍ진(晋)나라의 군대를 대파하고 실지를 회복하여 대사마로 임명되었다. 우리말샘

주4

중국 송나라 때의 대계(戴溪)가 춘추 전국 시대의 손무부터 오대(五代)의 곽숭도(郭崇韜)까지 역대 명장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논한 책. 우리말샘

주5

중국 북송의 유학자(1020~1077).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橫渠). 유가와 도가의 사상을 조화시켜 우주의 일원적 해석을 설파함으로써 이정ㆍ주자의 학설에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역설(易說)≫, ≪서명(西銘)≫, ≪동명(東銘)≫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6

중국 송나라 강정 9년(1040)에 증공량(曾公亮) 등이 인종의 명에 따라 쓴 병서. 1230년에 간행한 것으로, 고금의 병서를 참고하여 진법ㆍ기계ㆍ공방의 도구 따위를 그림으로 그렸다. 전ㆍ후(前後) 2집으로 되었는데, 전집은 제도(制度) 15권에 변방(邊防) 5권, 후집은 고사(故事) 15권에 점후(占候) 5권이다. 40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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