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숭산성 ()

건축
유적
문화재
고려시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된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석축 산성.
이칭
이칭
합천 미숭산성(陜川 美崇山城)
유적
건립 시기
고려시대
관련 국가
고려
관련 인물
이미숭 장군
둘레
1,325m
소재지
경상남도 합천군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기념물(1983년 12월 20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합천군
내용 요약

미숭산성(美崇山城)은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고려시대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고도가 높은 미숭산의 험준한 자연 지형에 따라 쌓은 성으로 그 둘레는 1,325m에 이른다. 합천은 역사·지리적으로 대가야에 속했던 지역이고 남쪽의 불무골은 대가야의 철산지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한동안 미숭산성은 가야의 성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이 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의
고려시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사용된 경상남도 합천군에 있는 석축 산성.
발굴경위 및 결과

미숭산성(美崇山城)은 대가야의 왕성(王城)으로 추정되는 주산성에 인접해 있으며, 성의 남쪽에는 대가야의 철산지(鐵産址)가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으로 인해 그동안 이 성은 가야의 산성으로 추정되어 왔다. 1983년 경상남도 기념물 67호로 지정되었다.

미숭산성은 2001년 지표 조사를 시작으로 2002년 8월 1일부터 8월 30일까지 남문지의 정비 구간에 대한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청자 조각과 분청사기, 백자, 어골문(魚骨文) 기와 조각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로 인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이 산성이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형태와 특징

미숭산성이라는 이름은 고려 말기 이미숭 장군이 조선 왕조가 세워지는 것에 불만을 품고 이곳에 와 성을 쌓고 저항한 데서 유래하였다. 고려시대에 몽골이 침입했을 때나 왜구가 침입했을 때면 인근의 주민들이 이곳에 들어와 농성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산성은 해발 755m 주6 정상의 달각암을 기준으로 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다. 서쪽은 산의 8부 능선을 따라 지어져 성의 형태는 삼각형에 가깝다. 성벽은 대부분 무너진 상태이다. 조사 결과 성벽의 몸체 부분은 주1을 놓고 20cm 정도 크기의 부정형 주8을 안쪽으로 들여 허튼층쌓기를 하였으며 돌 사이에 주9을 많이 사용했다. 또한 성벽의 몸체 바깥쪽만 벽을 쌓은 후 내벽의 상단부는 몇 단의 석재로 마감하였다.

남문은 너비 4.2m로 개거식(開渠式)으로 지어졌다. 입구 바깥쪽 좌우에는 1.5m 간격으로 원형 구멍에 주10 역할을 하는 돌이 있으며, 문을 받치는 주11이 일렬로 쭉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많은 양의 기와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남문 입구와 양쪽 벽을 포괄하는 주12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문지의 양측 벽은 성벽에 사용된 것보다 큰 할석을 사용하였으나, 주3이 확인된다. 사용된 돌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동문의 구조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너비 1.5m 정도 되는 문의 혼적이 확인된다. 따라서 이 문은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만든 암문(暗門)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미숭산 정상의 달각암 일대에서도 돌로 만든 시설이 확인되는데, 이것은 주4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하고 있다. 성벽 내부에서는 직경 12cm 내외의 주5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따라서 성을 방어하기 위해 석환을 날리는 투석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의의 및 평가

미숭산성의 내부에서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도 수습되어 험준한 지형을 선호했던 가야의 방어 시설로 건설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성의 해발 고도가 너무 높아 일반적인 삼국시대 성곽의 입지와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입지나, 규모, 성벽을 쌓은 수법,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미숭산성은 대규모 이민족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은 고려시대의 주7용 산성으로 추정된다. 미숭산성의 둘레는 1,325m로 고려시대 입보용 산성 중에서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합천 미숭산성 지표조사보고서』(합천군, 2001)
『합천 미숭산성-합천군 미숭산성 남문지 정비 복원을 위한 시굴 조사 보고서-』(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4)
주석
주1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주3

벽돌 쌓기에서, 여러 켜의 세로줄눈이 상하로 일직선으로 이어진 줄눈. 우리말샘

주4

봉화를 올리던 둑. 전국에 걸쳐 여러 개가 있었는데, 특히 남산은 각 지방의 경보(警報)를 중앙에 전달하는 국방상 중대한 임무를 전담하는 곳으로 다른 곳과 달리 다섯 개나 있었다. 우리말샘

주5

지름 10cm 안팎의 둥근 돌 주위에 날이 있고 중앙의 구멍에 자루를 박아 무기나 땅을 파는 도구로 쓰던 간석기. 우리말샘

주6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과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경계에 있는 산. 미숭산 자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높이는 733.5미터. 우리말샘

주7

보(堡) 안에 들어와 보호를 받음. 우리말샘

주8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주9

돌을 쌓아 올릴 때, 돌과 돌의 틈에 박아 돌리는 돌. 우리말샘

주10

문짝을 여닫을 때 문짝이 달려 있게 하는 물건. 돌쩌귀나 문장부 따위이다. 우리말샘

주11

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 놓은 돌. 우리말샘

주12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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