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공서(公瑞), 호는 인재(認齋). 민여준(閔汝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기(閔機)이고, 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이며, 어머니는 형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딸이다. 민정중(閔鼎重)과 민유중(閔維重)의 형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50년(효종 1) 생원시에 장원하고, 1664년(현종 5) 춘당대 문과(春塘臺文科) 회시에서 장원급제하여 전적이 된 뒤 지평·남양현감·이조좌랑·교리를 거쳐 1669년 수원부사에 이어 다음 해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는데, 그곳 전결(田結)의 등급을 하향 조정할 것을 건의하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등 많은 치적을 올렸다.
그 뒤 예조참의·호조참판·강화부유수가 되었다. 1674년(숙종 즉위년) 대사헌 재직 중 현종의 죽음에 따른 시호와 승습(承襲)을 청하기 위한 고부청시승습 겸 사은부사(告訃請諡承襲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형조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하였다.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조정에서는 충후하였다는 평을 들었는데, 뒷날 후손들이 노론의 중심세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