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시중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남양현감, 이조좌랑,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공서(公瑞)
인재(認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25년(인조 3)
사망 연도
1677년(숙종 3)
본관
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주요 관직
남양현감|이조좌랑|예조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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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남양현감, 이조좌랑,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공서(公瑞), 호는 인재(認齋). 민여준(閔汝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기(閔機)이고, 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이며, 어머니는 형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딸이다. 민정중(閔鼎重)과 민유중(閔維重)의 형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0년(효종 1) 생원시에 장원하고, 1664년(현종 5) 춘당대 문과(春塘臺文科) 회시에서 장원급제하여 전적이 된 뒤 지평·남양현감·이조좌랑·교리를 거쳐 1669년 수원부사에 이어 다음 해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는데, 그곳 전결(田結)의 등급을 하향 조정할 것을 건의하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는 등 많은 치적을 올렸다.

그 뒤 예조참의·호조참판·강화부유수가 되었다. 1674년(숙종 즉위년) 대사헌 재직 중 현종의 죽음에 따른 시호와 승습(承襲)을 청하기 위한 고부청시승습 겸 사은부사(告訃請諡承襲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형조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하였다.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조정에서는 충후하였다는 평을 들었는데, 뒷날 후손들이 노론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참고문헌

『효종실록(孝宗實錄)』
『현종실록(顯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동문휘고(同文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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