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사상계』 5월호에 발표되었고, 그 해 이 작품으로 제1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의 자유와 양심을 그린 소설이다. 바비도는 1410년 이단(異端)으로 지목되어 분형(焚刑: 화형)당한 영국의 한 재봉 직공이다.
바비도가 영역(英譯) 복음서를 비밀리에 읽는 모임에서 돌아오던 날 밤, 문득 교구마다 돌아다니며 이단을 숙청하고 있는 순회재판소를 생각하고, 성서의 진리를 거역하는 갖가지 독단과 위선에 대하여 강한 분노를 느낀다. 바비도는 이러한 현실적 불합리와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종교재판정에 나가게 되고, 어떠한 회유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하여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된다.
이 종교재판의 과정에 등장하는 사교와 주고받는 문답에서, 한낱 재봉 직공에 불과한 바비도가 어떻게 인간됨의 조건과 그것을 수호하는 데 요구되는 양심의 문제를 사회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지 잘 드러내 준다. 그리하여 바비도는 스미드필드 광장에서 타오르는 장작더미의 불꽃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운집한 군중들의 고함소리와 헨리 태자의 간곡한 회유도 일개 하층민의 투철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 드러난 인간의 기본적 자유와 양심에 대한 갈등과 저항과 죽음의 궤적은, 1950년대 한국 사회에 제기되는 심각한 문제들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일제 식민지치하에서 손상된 민족적 정기의 회복과 6·25로 입게 된 피해의식의 치유라는 시대적 소명이 과거 역사의 현재적 관점에서의 재구성에 의하여 거족적으로 환기되는 의의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부패한 자유당 정권을 풍자한 것같이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현실이 강요하는 권위와 독선에 대항하여 보다 적극적이면서도 인간의 숭고한 존엄성의 수호를 외치는 실천적·반항적 인간형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재래 한국 소설의 순수적 토속공간을 파괴하고 현대적 지성 위에 체질적 현대화를 단행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비도를 통하여 제시된 사회적 정의와 개인적 양심의 문제는, 단순한 도덕적 인간형의 제시 차원을 뛰어넘는 현대인의 비극과도 상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