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경기전참봉, 헌릉참봉, 왕자사부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
이칭
현재(顯哉)
죽천(竹川)
시호
문강(文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26년(중종 21)
사망 연도
1597년(선조 30)
본관
진원(珍原,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
주요 관직
경기전참봉|헌릉참봉|회덕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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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경기전참봉, 헌릉참봉, 왕자사부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
개설

본관은 진원(珍原). 자는 현재(顯哉), 호는 죽천(竹川). 할아버지는 선교랑 박간(朴衎)이고, 아버지는 진사 박이의(朴而誼)이며, 어머니는 습득 최명기(崔命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1568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유희춘(柳希春)이 감사(監司)였을 때 천거되어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이 되었고, 다시 헌릉참봉(獻陵參奉)으로 옮겼으나 곧 그만두었다. 1581년 왕자의 사부(師傅)가 되었고, 함열(咸悅)·회덕(懷德)의 현감을 역임하였으나 상관의 뜻을 거슬려 파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계영(任啓英)·김익복(金益福)·문위세(文緯世) 등과 보성(寶城)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정병 700여 명을 모집하고, 문인 안방준(安邦俊)을 종사(從事)로 삼고 장자인 박근효(朴根孝)를 참모로 삼았으나, 병으로 의병을 통솔할 수 없자 임계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1597년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적이 호남을 침범하자, 전 판관(判官) 송홍렬(宋弘烈), 생원 박사길(朴士吉) 등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장이 되었다.

동복(同福)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으나 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좌승지에 추증되고 보성의 용산서원(龍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죽천집(竹川集)』
『성호집(星湖集)』
『은봉전서(隱峯全書)』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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